내게는 누가 ‘데오빌로 각하’일까?

<교회력에 따른 말씀묵상>

누가복음 1장 3절: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개역개정)

누가는 성경 속에 두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지요. 그런데 두 권의 책이 모두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헌정하는 형태로 쓰여져 있습니다. 아마도 지체가 높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로마총독 베스도에게만 사용한 “각하”라는 경칭을 데오빌로에게 쓴 것을 보면, 총독 정도 수준의 사람인 모양입니다. 그가 실제로 역사에 있었던 인물인지, 아니면 가상의 인물의 이름을 빌려 저작물의 형태를 갖추던 습관이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조창수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3때는 짝궁이기도 했습니다. 고1때부터는 저와 함께 교회도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를 진학하고부터는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초에 대학교 초급반 학생인 그가 “장차 ‘반도체’가 공학의 중심 테마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니까, 꽤 일찍부터 전자공학의 깊은 분야에까지 지식을 가진 이였습니다. 그렇게도 바삐 지났는지, 2003년 경에 그로부터 전화연락을 받기까지 그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전화로 제게 전해 준 소식은, 그가 수원 어느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데, 췌장암 말기 환자여서, 진통제를 계속 맞고 있기 때문에 거의 혼수상태에 있다 했습니다. 긴히 제게 부탁했다며, “어서 좀 와서 내가 죽기 전에 세례식을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저는 부산서부터 수원까지 세례식 준비를 해 가지고 불이나게 달려 왔습니다. 병실에 들어서니 그는 여전히 계속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간병을 하던 분에게 세례식 보증인을 좀 서 달라고 하고, 저는 잠을 자고 있는 제 친구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는 병상 곁에서 친구가 깨어날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깨어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고, 그냥 숨을 쉬는 것이 그의 활동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문방구에서 대학노트 한 권을 사 가지고 다시 병실로 들어가서 친구 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간증이었습니다. “나는 왜 예수를 믿는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큰 글자로 썼더니, 대학노트 한 권을 거의 다 썼습니다. 친구가 깨어나거든 좀 읽게 해 달라고 간병사에게 부탁하고, 저는 부산으로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 다시 제게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가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례를 제게 부탁하더라는 전갈도 주었습니다. 저는 장례준비를 해 가지고 다시 갔습니다. 제가 만났던 간병사가 반색을 하며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그 친구가 잠에서 깨기만 하면 저의 간증을 읽어달라 했고, 간병사에게 배워서 ‘Amazing grace’ 복음성가를 끝도 없이 함께 불렀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만이 아니고, 우리 각자에게도 ‘내가 믿는 예수’를 증언할 기회가 수 없이 옵니다. 지체 말고, ‘데오빌로 각하’에게 ‘생명의 간증’을 쓰던 누가처럼, 우리들도 생명의 간증을 전합시다.

<기도> 주님, 우리들의 입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증거하는 소리가 샘솟게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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