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나?

<주일복음본문 묵상>

마태복음 22장 37-3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개역개정)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하신 말씀은 눈에 보이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니까, 말씀의 분량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합니다. 하지만,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시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명확한 뜻을 모르겠는 것이 이 말씀을 읽을 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부모님을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 드리는 것이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인가고 말입니다. 여름엔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돌봐 드리고, 겨울에는 뜨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돌봐 드리며, 건강에 좋은 식사를 삼시 드시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부모님이야 인간이시니까, 그럴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쉬운 것이 없으니까, 그런 일 해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뭡니까? 하나님을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것일까요?

부모님들이 자식들만 만나면 늘 묻는 것이 건강이고, 공부하기가, 또는 일하기가, 살아가기가 힘들지 않으냐 하는 것이 주된 질문이니까, 늘 건강하기를 힘쓰고, 이런 저런 걱정 안 해도 되시게 해 드리면 부모님 사랑하는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일하면서 잘 살고 있는 것도 하나님 사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은 것에 하나님 사랑의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더 깊은 것이 무엇일까요? 부모님들이 자식들의 형제우애를 가장 기뻐하시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우애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제일 보고 싶어하실 것 같습니다. 그 우애의 극치가, 많은 우상들 때문에, 인간들의 죄 때문에,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산산히 부서진 하나님의 가정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5장에서 집을 떠나서 제 멋대로 나가 버린 탕자가 돌아오는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깨어진 하나님의 집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대속의 제물로 희생 당하시는 고통까지도 겪으셨습니다. 이렇게 인간들에게 멸시와 치욕을 당하시면서도 이루시려고 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담으로 말미암아 결별된 하나님의 가정을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우리의 힘과, 지혜와, 정성을 기울여 깨어진 하나님의 가정을 회복하는 일(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의 깨어진 가정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에 저의 힘과 정성도 바쳐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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