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구요?

<교회력에 따른 말씀묵상>

누가복음 10장 33-34절: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성공회 사제인 제 아들은 일본성공회의 인력난을 돕기 위해서 일본 규우슈우 교구를 섬기러 제 며느리, 손자, 손녀와 함께 가서 14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제 손자가 소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같은 학교 상급생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겁니다. 학교 건물 나오면서 실내화를 벗고 운동화를 신고 있는 동안에 느닷없이 “조선놈이 왜 일본 와서 꺼떡거리느냐? 네 나라로 가라”고 하면서 마구 때리더라는 겁니다. 제 맘 속에서 강한 증오심이 발동하더니, “당장 짐 싸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와라” 이렇게 아들에게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그 옛날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쓰레기 족속’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만지는 것 만으로도 부정 탄다고 생각해서 접근을 하지 말라고 대대로 일러 왔습니다. 그런데 강도를 만나 사경에 이르렀던 한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의 도움을 받아 구출되는 장면을 주님께서 상정하시고는 이것이 ‘이웃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부분에 보면,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37절)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도와 주면, 마치 호랑이 새끼를 키워 주는 일 같아서, 장차 자라게 되면 날 잡아 먹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런 원수를 사랑하라구요? 말도 안 됩니다.

우리 나라를 괴롭힌 나라들이 일본을 위시해서, 중국, 몽골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역사 시간에 배웁니다. 다시는 그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에게 사마리아 사람처럼 ‘원수도 사랑하라’ 하십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어요? 그들이 우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아시지 않아요? 안 됩니다. 결코 그런 바보 같은 일은 우린 안 합니다.. 더구나 ‘일본놈’ 도와 주면 ‘친일파’라고 찍히게요?” 우리 속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사무칩니다. 하지만 주님은 새 마음을 주십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착한 사람에게나 심지어 하느님을 배반하는 사람에게도 똑 같이 햇볕과 단비를 내리시지 않느냐(마5:45)고 말씀하십니다.

<기도> 참 삶의 길, 참 평화의 길은 원수도 사랑하는 것이라 하셨사오니, 그 말씀 순종할 힘과 믿음 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