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처럼 번지는 복음

<교회력에 따른 말씀묵상>

누가복음 13장 20-21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 덩이가 부풀어 올랐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누룩과 같다.”

제1세기로부터 4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지독한 박해 아래 있었습니다. 사자 밥으로 던져지기도 하고, 장대에 꽂혀 높이 매달아 태워서 로마시의 밤을 밝히는 불꽃이 되기도 하고, 보이는대로 참수형을 당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계속 퍼지고 있어서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기독교는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을 설명하는 한 메노나이트 계열의 학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에게는 로마의 카타콤과 같이, 비밀 루트로만 찾아 올 수 있는 예배의 처소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세 사람의 만남을 통한 잠시 잠깐 동안의 밀회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과 약속들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 그들의 예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생활과 기도생활은 끈질기게 지탱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성실성, 남다른 정직성과 인내, 동정심, 경건성, 숭고한 정신, 이런 태도는 이웃의 사람들에게 대단한 궁금증을 품게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저토록 인간이 성실하게 살 수가 있을까고 말입니다. 너무도 궁금한 사람들은 어느 날 그들에게 접근해서 묻는답니다.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도 성실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저도 당신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 그들은 그저 싱긋 웃기만 했지 대답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 번을 묻고, 세 번을 묻고, 참으로 진지한 질문이라고 판단될 때면, 이윽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이 ‘누룩식 선교’가, 오늘날도, 소리 내지 않고, 특정인에 의존하지 않으며, 하등의 경비도 들지 않고, 비록 무슬림, 공산주의, 힌두교, 세속주의 등의 크고 작은 박해 아래서도, 기독교 전파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또 하나의 내밀한 전도방식이었던 것입니다.

<기도> 주님, 제가 말로 복음을 전하기보다, 제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