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에페소 6장 19절: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내가 말을 할 때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고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전할 때에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해 주십시오.”(공동번역)
제가 갓 중학생이 되었던 때에 서울 미아리고개 동네에 살았습니다. 한옥이 줄 지어 있는 사이에 큰 공터가 있어서, 인근 동네 아이들이 모여 들어 늘 그 곳을 놀이터로 삼았습니다. 때로는 서커스단이 와서 천막을 치고 공연을 하다가도 가는 곳이었습니다.
여름방학 중인가 그랬는데, 하루는 아침부터 그곳을 점령한 팀이 있었습니다. 약장사들이었습니다. 어떤 이름의 약을 팔았는지는 여지껏 몰라도, 남녀노소에게 다 좋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했습니다. 성능이 별로 안 좋은 마이크를 설치해 놓고 아침부터 시끄럽기 이를 데 없었지만, 아무런 이벤트가 없어 심심해 하던 1950년대 종전 후의 동네 아이들에게는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가죽 띠로 벗은 몸을 감은 근육질의 사나이가 있었는데 그가 ‘차력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기의 기운을 모아 들여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괴력의 사람’이 뒷켠에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차력사 시범을 슬슬 시작하겠다”는 마이크 선전은 동네 아이들이 곧장 모여 들게 만들었고, ‘곧 시작한다’고 하니 오줌도 참고, 밥 먹으러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시범이 “스을, 스을”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좀 모였다 싶으면, 마이크 잡은 수다스런 ‘MC’는 “시범을 기다리는 동안에 잠깐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하고서는 약을 팔았습니다. 그리고는 몇 명의 무명가수가 노래를 불렀지마는, 온통 사람들의 관심은 ‘차력사 시범’에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예고되던 ‘차력사 시범’은 이렇게 “슬슬 시작해 보겠다.” 고 말로만 떠들다가, 저녁 녘이 되어 다 거두어 가지고 약장수들도 ‘차력사’라는 사나이도 다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배 때마다 사용하는 우리들의 기도문은 마지막 ‘파송례’로 끝납니다. 부제가 큰 소리로 선포하는데,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회중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이렇게 예배가 끝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가서 전도를 하겠다는 것인데, 다음번 예배 때가지 전도는 쥐뿔도 안 하고 다시 와서 기도문으로 예배를 드리고는 또 다시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러기를 “차력시범을 슬슬 …” 하며 사기치던 사람들처럼, 평생 하느님 앞에서 이 노름만 하다가 우리들의 생애는 끝나고 마는 것입니까?
<기도> 주님, 실천력을 주시옵소서. 말로만 ‘아멘’이 아니라 몸이 ‘아멘’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