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17장 2절: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 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공동번역)
제가 열 살 무렵에는 서귀포 자구리 바닷가에 살면서도 아직 수영을 못했습니다. 하루는 동네아이들과 물가에 매어 둔 뗏목 위에 올라가서 뗏목을 흔들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기서부터 담뱃대를 흔들며 뗏목 주인 할아버지가 “이 놈들아, 썩 내려오지 못해”하시며 달려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잽싸게 물로 뛰어들어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가까이 오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저도 하는 수 없이 바닷물에 뛰어들고 말았습니다. 물은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만큼 깊었습니다. 저는 한참 물을 꼴깍꼴깍 먹으며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이걸 어서 잡아”하시며 제 머리를 두드리시는 할아버지의 담뱃대를 잡고 뗏목 위로 올라왔습니다. 엉겁결에 일어난 일이라, 혼이 난 저는 연상 할아버지께 “고맙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인사를 드렸습니다. “헤엄도 못 치면서, 왜 물에는 뛰어들어?” 하시는 할아버지가 그렇게도 고마왔습니다.
이런 자구리의 추억을 가진 저이기 때문에,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바닷물에 빠뜨리는 형벌”이 최극형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는 것은 죽어도(?) 싫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작은 소자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일을 범하는 죄”에 가해지는 형벌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루는 물방앗간에 가서 연자맷돌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저것이 내 목에 달릴 것이란 말이지? 짐작에 피아노 세 개 무게는 돼 보입니다. 그러면 1천 킬로그램, 한 톤은 되는데, 그것을 목에 달고 물에 빠뜨린다니 어떡할 겁니까?
저는 한 때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얼마나 많은 제자들을 그르칠 말을 했는지요, 또 한 때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글을 썼는지요, 또 45년 가까이 소위 성직자랍시고 살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족케 했는지요? 이것 다 감당하려면 몇 번을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물에 빠져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수 백 번은 반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어쩝니까? 누가 얼마나 실족하게 되었는지 일일이 기억도 나지 않는데,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고쳐 말해 줄 수도 없고, 수 백 번을 연자맷돌을 목에 감는 일도 감당할 수 없고,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오로지 죄 사하시는 예수님의 은총에 매달리는 수 밖에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주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기도> 주님의 죄 사하시는 은총에만 매달립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