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18장 40-41절: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 소경을 데려 오라고 하셨다. 소경이 가까이 오자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셨다.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그가 대답하자…(공동번역)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 마을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한 소경이 나서서 외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얼마나 귀청이 따갑도록 이 말을 반복해 외쳤는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좀 그만 멈추라고 그를 핀잔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가시던 길을 멈추고, 그를 좀 당신 앞으로 불러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윽고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이 소경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요?”
아니, 몰라서 물으십니까? 소경인 사람이 바랄 것이 뭐겠어요? 눈 뜨는 것 말고 바랄 것이 뭐 더 있어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마는, 주님께서는 이런 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정말 모르셔서 묻는 질문은 아니지요.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소경은 주님 앞에 대답합니다. 그것은 ‘한맺힌 탄식’과도 같았고, ‘서러움에 복받치는 한숨’과도 같았습니다. “주여, 저 눈 좀 뜨게 해 주옵소서.” 했습니다.
저는 판소리로 부르는 ‘심봉사의 눈 뜬 장면’을 좋아합니다.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저는 그 장면을 좋아합니다. 당사자인 여리고 마을의 소경도, 쏟아져 내리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눈을 떴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아까부터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호칭할 때부터 예수님은 그를 심상치 않게 여기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메시야’(구세주)의 별명으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지금 모든 사람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제일 잘 아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경처럼 주님을 향해 외치지도 않고, ‘좀 도와 주십사’고 빌지도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주님 앞에 ‘건방을 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여리고 마을을 지나, 예루살렘에 이르시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은 주님만 알고 계시는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 기회를 붙잡은 이 소경에게서 우리는 배웁시다. 주님을 향해 외칩시다. 좀 도와 주십사고 빌읍시다. 우리가 믿는 주님이신데 왜 못 빕니까? 빕시다.
<기도> 주님이시여, 그리스도시여, 좀 도와 주시옵소서. 코로나 바이러스, 이 죽음의 장막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 절망의 늪에서 우리를 건져 내어 주시옵소서. 점차로 조여 오는 이 사망의 덫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로지 주님 뿐입니다. 구원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