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소망을 노래하자

하박국서 3장 17절: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 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새번역)

바울과 실라가 제2차선교여행에서 빌립보에 다달았을 적이었습니다. 점치는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것이 화근이 되어 투옥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매를 많이 맞고, 족쇄로 채워져 지하감방에 갇혔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신음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신음소리는 밤이 깊어갈수록 찬양의 노래로 바뀌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찬양소리는 온 감옥 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반응하실 만큼 찬양소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홉 살 나던 1950년에 한국전쟁을 당했습니다. 평양을 떠나 피난민 소년으로 온 가족과 함께 부산까지 내려갔습니다. 초량동 부둣가 가까이 피난민 수용소로 들어갔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밤 중에 불 꺼진 수용소 막사 안에 소녀들의 조용한 노랫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자비하신 예수여 내가 사람 가운데 의지할 이 없으니 슬픈 자가 됩니다 맘이 어두웠으니 밝게 하여 주소서 저를 보호하시고 항상 인도하소서.” 이 조용한 찬미를 듀엣으로 불렀는데,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음악연주였습니다.

제가 아는 호주 성공회 신부가 있습니다. 한국에도 내외 분이 함께 오셔서 간증집회를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상처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오셨을 때에는 혼자 오셨습니다. 다시 간증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사모님 장례 때에 그는 절망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니, 하늘나라에서는 자기 아내의 개선행진이 있을 것이라는 기쁨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 감사성찬례의 마감찬미를 “오 마칭 인” 하며 노래하는 ‘하늘의 개선행진곡’을 다 함께 불렀다 했습니다.

하박국은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절망 뿐이었습니다. 앗수르제국의 침략으로 모든 산업은 산산히 파괴되었고, 제 구실 할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갔으며, 성전예배 마저 상실한 유대 나라에 이제 다시 재기의 소망이란 끊어졌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은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무화과 나뭇잎은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 한 분으로 즐거워 하리.” 이것은 온 민족을 재기시킨 노래가 되었습니다.

<기도> 주님, 이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노래를 주시며, 아픔 가운데서도 찬양노래가 터져 나오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지금 온 세계가 신음하며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음이 찬양으로 바뀌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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