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촉 천민’ 달릿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새번역)

오늘은 16세기 ‘선교의 횃불’ 프란시스 자비에르를 기념하며 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하는 날입니다. 그는 스페인 출생으로 28세에 하나님께 일생 헌신하기를 바라는 친구들 일곱 명과 함께 ‘예수회’를 설립하고, 고향을 떠나 인도로 갔습니다. 당시 백인들은 전 세계 나라들을 침략해서 약탈을 일삼던 시기여서, 선교의 가장 큰 방햇꾼이 백인들이었습니다. 같은 백인이 전하는 복음이 전혀 본토인인 인도인들의 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도의 차별주의 계급문화 때문에 소위 ‘불가촉 천민’으로 차별 받아 짓밟히며 살던 3억의 ‘달릿’ 최하 계급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스리랑카,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심지어 말레이시아까지 퍼져 살면서도 그곳에서 차별을 받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선교의 발판이 되면서 크게 선교가 이루어져 가던 무렵, 친구들에게 인도 선교를 맡기고, 자비에르는 다시 일본으로 자리를 바꿉니다.

일본 카고시마, 교오또오, 야마구찌 등지에 선교 포스트를 세웠습니다. 일본 땅에 복음의 불꽃을 지핀 후, 그는 또 다시 크나 큰 중국에 복음을 전하고자 광뚱 지방에 도착했지만, 중국 당국이 백인의 상륙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크선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다가, 병을 얻어 46세를 일기로 그만 숨을 거두고 맙니다.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저는 제 친구 윤정현 신부의 소개로 인도인 달릿 출신 윌리엄 싱엄 주교를 만날 수 있었고, 지금껏 그와 사귀고 있습니다. 싱엄 주교는 인도의 신학교에서는 입학을 거부 당했지만, 영국에서 신학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의 대표적인 두 개 기독교 교단, 남인도교회와 북인도교회가 모두 그의 목사 안수를 거부했습니다. 달릿을 안수하게 되면, 그런 교회에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그 어느 계층의 사람도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신학교 동창 주교들이 와서 그에게 목사 안수와 주교서품을 했습니다.

이 분은 달릿의 ‘인간 존엄’을 위해 평생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교회에는 달릿들이 자유롭게 출석합니다. 그의 사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고아원이고, 초등학교이고, 또 신학교입니다. 그의 꿈은, 달릿들로 하여금 인도의 복음화의 동력원이 되고, 또 세계 선교를 위해 공헌하게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합니다.

<기도> 주님, ‘주여, 주여’ 하는 자라고 다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 대로 사는 자라야 간다 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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