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21장 28-31절: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맏아들은 대답하기를 ‘싫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 그는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예,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서는,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예수께서 이렇게 물으시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맏아들입니다.”… (새번역)
개역개정판성경은,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갔던 아들이 둘째아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번역성경이나 새번역은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갔던 아들이 맏아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참조한 희랍어 원문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번역자가 고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의 둘째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뉘우치고 돌아온 아들이 둘째아들로 기록된 개역번역을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오래도록 하나님을 등지고 산 사람이어서, 이 본문은 공동번역과 새번역의 ‘뉘우친 맏아들’의 줄거리에서 둘째아들인 저는 깊은 교훈을 받습니다.
‘배신’이라는 말의 반대말이 뭘까요? 국어 시험에서는 ‘신의’ 또는 ‘의리’라고 써야 하는지 몰라도, 예수님은 오늘 제게 말씀하시기를 ‘뉘우침’이 ‘배신’의 반대말이라고 하십니다. 잘못을 ‘뉘우쳐’ 돌아오는 탕자 이야기가 말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고, 요나의 경고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무더기로 ‘뉘우쳐’ 돌아온 일도 바로 이것입니다. 신의와 의리, 그리고 순종은 뉘우침의 결과입니다.
언제 뉘우쳐도 뉘우치기만 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요? 뉘우치면 행복한 삶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왜 뉘우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인, 김아무개, 이아무개라고만 생각하는 것일까요?
네, 제가 뉘우쳐야 하기를 주님은 오늘도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도> 저희들의 뉘우침을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회개하여 엄청 복된 날 맞이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