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23장 37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않았다.” (새번역)

저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농촌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집 뜰에 닭들이 노는 것이 제게는 익숙한 정경입니다.

하루는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몰고 뜰에 다니면서 두 발로 흙을 뒤져 병아리들에게 먹을 것을 찾아 주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암탉이 ‘꼬꼬꼬꼬’ 소리를 내니까, 병아리들이 일제히 ‘뿅뿅’ 거리며, 암탉이 펼친 좌우 날개 아래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병아리 열 마리가 잽싸게 엄마 몸에 다 숨고 마는 거에요. 저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공중에 솔개 한 마리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암탉의 지혜도 대단히 용하지만, 엄마닭의 ‘꼬꼬’ 거리는 말의 뜻을 알아차리는 병아리들의 지혜 역시 놀랍게 여겨졌습니다. ‘언제 저런 교육을 병아리들에게 시킨 것일까? 아니면, 본능적인 동작일까?’

주님께서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돌보시고 계시는 대상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뿐이겠습니까? 온 세계의 인류를 돌보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만이 아니고, 교회 바깥의 사람들도 돌보고 계십니다. 2천 년 전에도, 21세기인 지금도 돌보고 계십니다.

교회력으로 성탄일이 지나면, 연 사흘 간 죽은 사람들의 기념일이 뒤따릅니다. 하필이면 죽은 사람들의 기념일들을, 가장 기쁘게 경하할 성탄일 다음에 배치했는가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은 교회가 일부러 명절 뒤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이 분들의 기념일을 역사고증을 통해서 찾아 본 결과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최초의 순교자 스테반을 기념합니다. 스테반은 그의 입으로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였고, ‘봉사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였고, 그의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의 소망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완벽한 주님의 증인으로 순교하신 분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세상에 계실 때에, 뭇 사람들을 사랑하셨으며, 스테반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서 세상 사람들을 품으십니다. 본문 말씀대로, 암탉이 병아리들을 품듯이 하십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서 만이 아니고,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주님의 보호는 뿌리침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 항상 우리 인간에게서 냉대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시여!

<기도> 슬픈 이 날, 스테반의 처절한 죽음을 기억하며, 주님께 빕니다. 미련한 저희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들을 냉대하지 않게 성령으로 항상 깨우쳐 주옵소서. 귀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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