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2편 2-3절: 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전선을 펼치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함께 꾸며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거역하면서 이르기를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하는가? (새번역)
T. S. 엘리옷의 희곡 ‘대성당의 살인’에서 주인공 토마스 베켓 대주교가 바로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주후 1170년 12월 29일 살해된 당사자였습니다. 이 희곡은 역사적 사실에 토대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역사 왜곡은 없습니다.
베켓 대주교는 영국의 국왕 헨리2세와 청년기부터 오랜 친분을 가지면서, 의회 의원, 외교관, 군인 등 국가 요직을 두루 지내던 끝에 대주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국왕의 계획으로는 자기와 친분이 있는 대주교를 앉히면, 교회가 무슨 일이든 협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베켓을 권유해서 대주교 자리에 앉혔지만, 그는 오히려 금욕생활과 자선사업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국왕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베켓 대주교는, 자신이 국왕과 일정 거리를 두는 것이 교회의 권위를 지키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국왕과 자주 의견이 상충하는 일이 있어서, 끝내 베켓은 국왕과 결정적인 충돌을 피하고자 프랑스로 갔습니다.
6년 후에 헨리2세와 다시 화해를 이룬 대주교는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헨리2세는 자신의 심복이며 주교 가운데 한 사람을 베켓에게 보내서, 과거 교회재판으로 출교처분을 받은 사람들을 복권시켜 달라는 명령조의 요청을 했습니다.
베켓 대주교는 상심을 했습니다. 결국 국왕과 맞서게 되고 마는구나 하며 고심하던 끝에, “국왕이 교회의 권위에 간섭하거나 사주하는 일은 좋지 않다”고 결론을 맺고,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대주교가 국왕의 요청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헨리2세가 프랑스 노르망디를 여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격노한 국왕은 신하들 앞에서 큰 소리로 베켓을 저주하는 욕설을 내뱉습니다. 이를 곁에서 듣고 있던 기사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것은 국왕이 대주교를 암살할 것을 바라는 것이라고 그들은 판단했습니다.
그 즉시로 네 명의 기사는 도버해협을 건너 켄트에 있는 캔터베리 대성당을 찾아가서, 칼을 빼어들고 주교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주교는 황급히 대성당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네 명의 기사는 대주교를 따라 대성당으로 돌진해서 중앙 제대 앞까지 따라가 대주교 베켓을 살해했습니다.
이것은 희곡작품의 줄거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주후 4세기 이래로 1천 5백 년을 지내 오면서 세속적 왕권과 교회의 권위가 부딛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때마다 교회와 복음을 수호하려는 사람들은 목숨을 내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지 않고 교회의 ‘수좌’라는 사람이 세속의 왕권에 굴복하게 되면, 교회는 그날부터 국왕의 시녀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주님, 땅 위에 세우신 주님의 교회를 돌아보사, 세상 권력과 야합하는 일이 없게 하시며, 세속의 권력자 앞에 종노릇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