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2장 22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묵은 포도주가 ‘구약의 신앙’을 말한다고 보면, ‘낡은 가죽 부대’란 모세 오경이 말하는 율법을 준수하는 일과 제사 관습을 비롯해서, 모든 예언자들의 영적 각성운동까지 포괄하는 유대인의 신앙생활 전통을 말합니다.
‘새 포도주’는 ‘신약의 신앙’으로서, ‘새 부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새로이 시작하게 된 예배 행위를 비롯한 그들의 새로운 신앙 관습 일체를 말합니다.
묵은 포도주인 유대교 신앙과 ‘새 포도주’인 기독교 신앙은 같은 ‘포도주’인 점에서는 공통됩니다. 그 공통된 신앙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물은 질문과 똑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가장 큰 계명이라 하셨고,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계명이 있다’ 하시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를 꼽으셨습니다. 이 두 계명이 신-구약을 총 망라한 신앙의 골자입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 사이에는 아무런 단절이 없었습니다. 다만 유대인의 박해 하에서 제1세기 교회가 유대교를 완벽하게 벗어나온 듯이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낡은 가죽 부대’인 유대인들의 신앙관습을 벗어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실한 신념을 말씀하셨습니다. ‘새 포도주’인 복음을 ‘새 부대’에 담을 것이라는 계획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사 종교의 연결선상에서 온 인류를 위한 대속의 제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갈보리 언덕에서 최후의 ‘완결판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던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고, 다시는 지성소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성소는 성령께서 임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지성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인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성령께서 함께 계셔서 일하십니다. 또,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간구하는 자들의 영혼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지상 전초지인 교회는 오늘도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 새 생명을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새 포도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부대’ 곧, 복음시대의 예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다시 기억하는 예배를 드리고, 성령께서 동행하심을 비는 ‘제자 파송예식’을 통해서 우리들의 사명을 다시금 다짐하곤 합니다.
<기도> 저희를 불러 십자가복음의 은총 안에 살게 하신 주님, 감사드립니다. 성령께서 저희의 삶을 주장하시어, 저희의 삶을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의 온전한 신앙 전통을 이어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