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19편 14절: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새번역)
제가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예전적 교회들의 관습을 따라,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합니다. 그러면 회중이 함께 “아멘” 합니다. 마치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 제 설교를 인준하시듯 모양새를 갖추고서, 준비한 설교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권위가 있어 보이지요.
제가 제 마음대로 설교문을 써 가지고, 설교단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이런 격식의 기도를 둠으로써, 혹시 저 같은 설교자들이, 하나님께서 회중을 향해서 선포하시고 싶으신 말씀만 전하도록 이런 격식을 둔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도 없이, 제 생각을 전한 적이 많았습니다.
또 저를 포함한 많은 설교자들은, 오늘의 시편 본문을 가지고, 설교 전 기도를 합니다. 이 때에 흔히 개역번역을 사용하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 되기를 빕니다.” 그러면 회중이 이 때도 다 함께 “아멘” 합니다.
이런 두 가지 관습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마음에 몹씨 괴로움을 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열납될’(기쁘게 받아 주실) 만한 말씀을 준비한 것이 못돼도, 이런 기도를 드리고 설교를 했다니, 정말 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할 때에 이 기도를 드리지 말고, 설교를 준비하고 있을 때에 마음에 노상 이 기도를 드리면서 설교를 준비했던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가 있었을 터인데.. 이런 아쉬움을, 은퇴하고서야 후회하고 있으니, 이 송구스러움을 어쩐단 말입니까?
주여, 아침마다 말씀 묵상을 쓰고 있는 저를 주님의 굳센 손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기도> 주님, 빕니다. 지금이라도 제 입술의 말과 제 마음의 생각이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주님 마음에 드는 말만, 주님 마음에 드는 생각만 하도록, 이 부족한 종을 성령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