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사무엘상 3장 9절: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요한복음 1장 46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개역개정)
우리들은 지금 감옥처럼 사방이 갇혀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누구도 용빼는 재주 없이 갇혀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답답해 합니다. 그러나 이 때가 주님을 만날 만한 때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들 만이 압니다.
빌립은 나다나엘보다 먼저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그는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만나 볼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고작 ‘나사렛 사람’이 무슨 별 볼 일 있겠냐고 비웃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한 말이 “와서 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독교는 체험적 종교라” 는 말이 나왔습니다.
‘가서 보니’ 진실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한 분이시라는 것을 대번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보이지도 않는 곳에 계시면서, 나다나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와 항상 교신을 하고 계신 분이신 사실(요한1:51)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날로 그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집에서 자라나던 어린 사무엘은 한밤 중에 성소 한 곳에만 불을 밝혀 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깨닫게 되고, 시대를 구원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습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우리들은 모든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며 탄식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이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이 때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무엘을 부르시던 그 어느 밤중처럼..
빌립이 주님의 소식을 전하던 날 그에게 권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말이 “와서 보라”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갈 수도 없는’ 코로나상황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가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의 시대를 우리는 삽니다.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교회가 얼마든지 열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날마다 초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에 우리는 배달전문가들에 의존해서 배달을 받으며 살아 왔습니다. 복음도 배달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무슨 방법이 안 떠오르십니까? 또 수많은 전자기기들은 역시 복음을 더 할 나위 없이 신속히 배달하고 있습니다.
<기도> 주여, 이 캄캄한 코로나 상황 속에서 저희를 부르고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주여, “와서 보라”고 권유하시는 음성에 저희가 귀 기울이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