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111편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개역개정)

저는 평양 종로인민학교에서 1, 2학년까지 다녔습니다. 3학년은 전쟁 나던 해여서, 전쟁도발국인 북한은 그 해 봄에 학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학생들에게 제식훈련이라든지 군가를 교육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저는 반장이어서, 제 반의 인민소년단 단장을 겸했습니다. 반장이 되려면 우등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 품행점수는 낙제를 면하는 3점을 맞았습니다. 교회 다닌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배운 노래는 “태백산에 눈 나린다 총을 메어라 출진이다” “오늘은 북쪽 내일은 남쪽에 건설하자 빛난 사회를” “소련 나라 동무야 어여쁜 동무야” 이따위 노래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북쪽에서는 장차 전쟁 날 것을 어른이나 아이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1950년, 열 여덟 살의 제 사촌형은 전방에 배치 명령을 받아서 떠나야 한다며 우리 집에 인사차 들렀습니다. 그때 “널 다시 못 볼 터인데 부디 몸 조심 하거라” 하면서 조카를 품에 안고 눈물로 작별해 보내던 제 아버지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떠나간 사촌형은 전방 어느 곳에서 전사 당했을 것입니다.

평소에 학교에서 수업 시작할 때면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 앞에 먼저 인사부터 하고 수업을 시작하던 우리는, 이승만(남한 대통령)과 김성수(남한 부통령)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승만 김성수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입에 붙이고 살았습니다.

학교 벽보판에는 사상교육용 만화가 게시되어 있었는데, 남쪽 사람들의 얼굴은 늘 원숭이 무리로 꼬리를 붙여 그려 놓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아마도 남쪽 사람들은 원숭이들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나자마자 저는 매일 아침 동회 앞에 있는 벽보판에서 지금 인민군이 어디까지 진격했는가를 알리는 전황지도를 베껴 가지고 오는 것이 제 일과가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제가 그려 온 지도를 펴고 흥분한 말투로, 목사인 제 아버지 앞에서 “이제 조금만 더 밀고 내려가면 한반도는 통일이 되지요”하면서 애태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때마다 그저 제가 그린 지도를 보시며 덤덤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표정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왜 기뻐하시지 않을까?

이렇게 시작된 제 일생은 어렸을 때부터 전쟁 틈바구니에서 총알을 주워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고, 미국 군인, 영국 군인들을 바라보며 피난길에 올라, 수많은 군인들의 주검을 보면서, 밥 먹는 날 보다 굶는 날이 더 많던 어린 시절부터, ‘보수꼴통’이라는 말을 젊은이들에게 노상 들으며 사는 오늘날까지 제 귀에 많은 거짓말을 들으며 살아 왔습니다.

비록 청력은 약해져서 보청기 없으면 남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때가 제게도 왔지만, 확신하게 된 진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 입니다.

무슨 타이틀을 가진 자들이, 만 가지 소리를 해도, 공산당이 하는 소리, 주사파들이 하는 소리, 인본주의자들이 하는 소리, 무신론자들이 하는 소리, 뉴에이지가 하는 소리, 다 거짓말입니다. 하나님만 경외할 줄 알면, 세상 바로 살 수 있습니다.

<기도> 진리의 본체이신 주 하나님, 불학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사람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성령의 감화 안에 항상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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