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103절: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 (새번역)
저는 소위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태신앙이 맥을 못추어, 저는 교회를 등지고 한동안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호된 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매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술을 한껏 마시고 들어왔기 때문에 새벽에 배가 살살 아파서 배를 요에 깔고 엎드려 캄캄한 방안을 멀뚱멀뚱 눈을 뜨고 살피고 있었습니다. 제 눈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경책이 보였습니다.
그 성경책은 다른 책들에 누기가 차지 말라고 맨 아래다 깔아 놓았던 것입니다. 마음 속에 아버지에게 너무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랜만에 성경 좀 읽어 보자 하는 장난끼어린 발상으로 일어나 성경책을 꺼내서 펼쳤습니다.
어디를 읽을까 하다가 오랜만인데 창세기부터 읽어 보자 했습니다. 눈으로 읽는데 하나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제 흥미를 다소 끌었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하는 느낌 뿐이었습니다. 출애굽기로 들어갔습니다. 모세의 기적들은 더 재미가 없었습니다. 다분히 신화같은 옛 이야기였습니다.
레위기로 들어갔을 때에는 제가 엎드린 자세로 읽을 수 없는 느낌이 왔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저를 위해서 기록된 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팍팍한 법전인데도, 제게 주시는 친절한 법규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대단히 심취해 읽었습니다.
저는 진작 제가 읽어야 했던 책이라고 후회를 하면서 진지하게 읽어 내려가는 중에 아침 밥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오랜만에 식전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못된 인간 한테도 일용할 음식을 주시는 겁니까? 감사, 감사합니다.”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밥맛도 회복시켜 주시고, 특별히 말씀의 맛을 십 수 년 만에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밥상을 앞에 놓고도 지금 읽던 성경 구절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깡마른 법전의 말씀이 제게는 “왜 이처럼 꿀맛일까” 라는 느낌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저는 말씀의 맛을 잃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이 밥맛을 잃으면 인생 끝장이듯이, 제가 말씀의 맛을 잃지 않도록 늘 경계를 합니다.
성경을 펼치기 전에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제게 어떤 깨달음으로 인도하시려고 오늘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까? 성령께서 저를 일깨워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반드시 말씀의 맛을 회복시켜 주시곤 합니다.
<기도> 말씀으로 저희를 깨우치시고 양육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말씀의 꿀맛을 잃지 않게 하셔서, 구원의 백성으로 날마다 자라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