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시는 하나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94편 1-3절: “주님, 주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 빛으로 나타나십시오.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님, 일어나십시오. 오만한 자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벌을 내리십시오. 주님, 악한 자들이 언제까지, 악한 자들이 언제까지 승전가를 부르게 하시겠습니까?” (새번역)

피난소년으로 어느 시골에 가서 살고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들의 새로운 거처 동네 구경을 하러 열 한 살의 제 형과 아홉 살인 저는 집 앞으로 손을 잡고 나갔습니다.

바로 집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 열 댓 명이 떼를 지어 저희 형제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러고는 저희 둘을 에워싸고 시비를 걸어오는데, 저희들을 몰매질을 할 기세였습니다.

그때 제 형이 후다닥 동네 아이들의 포위망을 뚫고 집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도망치는 형을 보면서 배신과 절망감에 휩싸인 저는 혼자 ‘아, 난 죽겠구나’ 절망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집 밖으로 뛰쳐 나온 제 형이, 저를 둘러싼 아이들을 향해서 “모두 덤벼 이놈들아!” 큰 소리로 외치는데, 성격이 급한 형의 손에는 과도가 들려 있었습니다.

칼을 들고 나타난 제 형을 보자마자 아이들은 제 곁에서 모두 물러나서 곧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동네 아이들에게 위협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요사이 이름난 배구선수들이 갑작스럽게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그들의 경기를 TV에서 즐겨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 이 뉴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중학생 시절에 동급 반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학교폭력이라는 것은 학생 때의 일이니 크게 문제 삼을 것이 없다고 가벼운 문제로 취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것이, 피해자가 너무도 심적 고통이 커서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법으로는 학교폭력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사회교육적 효과를 위해서 가혹하게 그들이 처벌 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만시지탄입니다. 출중한 운동선수 소질을 지니고 자라나던 시절에 사회생활을 바로 하도록 정작 지도해야 했습니다.

비록 국가대표 팀이 약세가 된다 하더라도, 벌을 약화하거나 면제해 주어서는 안 되겠지요. 금메달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의 인간존엄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선수인데 너무 가혹하지 않으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행복하게 성장해야 할 중학생 시절에 지옥 같은 학교를 매일 가야 했던 피해자들과 그들의 동료학생들이 오늘도 떨고 있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비하신 하나님을 향해서, “복수의 하나님이 되어 주소서” 라고 호소하는 기도가 우리들의 성경책에 담겨 있는 이유입니다.

<기도>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 저희가 저희 어린이들의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도와 주옵소서. 그들이 학원폭력으로 일찍 인생 벼랑을 경험하는 일 없게 도와 주시고, 심지어 절망적 선택을 하는 일 다시는 없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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