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9장 22절: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개정개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에 가시면 잡혀 죽으리라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히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서슴없이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기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라 하셨습니다.
장로들은 누구입니까? 나이가 지긋한 유대인들의 지도자입니다. 그들은 마을에서는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고, 예루살렘에서는 백성들의 여론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메시아)이신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려 합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도 아니고, 민족이 선출하지도 않았으며, 뚱딴지 같이 침략자인 로마 총독이 임명했습니다. 유대인에게서는 최고위직이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대제사장을 임명하면서 총독이 반드시 그에게 부탁한 것이 둘 있었습니다. 첫째는 인두세를 철저히 바치게 할 것이고, 둘째는 반로마적인 움직임은 싹이 돋을 때, 제압할 수 있도록 정보업무를 민활하게 작동시킬 것. 각 지방의 회당장이나 세리들이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은 안나스와 가야바 두 사람이었습니다. (눅3:2) 그들의 판단으로는 나사렛 예수님이 반로마세력을 일으킬 수 있는 실력의 보유자라고 보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그들 기득권자들과 부딪친 일이 있어서, 그들 눈 밖에 났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처단하기로 의논이 맞아 있었던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누구입니까? 성서연구에 남다른 두각을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직책은 성서연구에 있었지만, 유대인 사회에서 행세하는 권력자에 기대고 사는 패거리들에 불과했습니다.
이상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기득권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때 거기서 살던 유대인 기득권자였다면 우리도 빌라도 법정에 서서 무리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처형하는 데에 일조하는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로 작정하신 선택이 마음에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이 사순절, 곧 ‘예루살렘 여행’의 첫 날인 오늘 탈락하고 말지도 모릅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어제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저는 교회의 예식에 나가서, 상징적으로나마 머리에 재를 썼습니다. 사죄를 비는 모양새를 냈던 겁니다. 제가 주님께 십자가를 메워 드린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9:27)
<기도>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 제가 십자가의 길 40일을 묵상함으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자 합니다. 제가 구원 받은 내력을 더욱 소상히 깨닫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고 제 몫에 태인 십자가를 잘 지고 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