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회개의 때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9장 15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의 손님들이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이니, 그 때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새번역)

1960년대에 명동에 음악감상실 ‘티롤’이 있었습니다. 거기 기성 문화계 인사가 아닌, 예비 문화계 청년들이 저녁마다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이름을 거명하면 모두 알만한 이들, 가령 송재호, 이정길, 박정기, 이반, 전운식, 전진호, 조해일, 박훈삼 등등의 청년들이 모이곤 했습니다. 때때로 함께 축구경기도 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멤버 가운데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일동은 ‘이때다’ 하고 형제애를 보이러 식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보아 하니, 축가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급조로 ‘티롤’ 그룹이 자청해서 축가를 부르겠다고 나섰습니다.

누군가가 ‘쁠레지르 다무르’(사랑의 기쁨)를 부르자고 했습니다. 사분의 삼 박자 멜로디에 가사가 “사랑의 기쁨은”으로 시작하니까, 결혼식 축가에 어련히 맞지 않겠나 싶은 생각으로 모두 동의했습니다. 하객 앞이니까, 서로 속삭이면서 “원어로?” 묻고는, “원어로 끝까지 아는 사람 별로 없을 터이니, 번역 가사로 부르자”고 얼른 합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선창을 하고 일동은 “사랑의 기쁨은” 하고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우리 모두는 아연실색을 하고말았습니다. 다음 가사가 살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머뭇거릴 수 없었습니다. 남의 결혼식을 망쳐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계속 부른 사람도 있었고, 대부분은 같은 생각으로 거기서 더 이상 부르지 못했습니다.

어떻든 노래는 계속되고,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까지 마치고 ‘티롤 그룹’ 일동은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와서 서로 집으로 내빼느라고 바빴습니다.

이런 꽁뜨 같은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주님 앞에 “왜 당신네들은 금식을 안 합니까?” 하고 묻던 질문이 역시 꽁뜨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구세주이시고, 온 교회의 ‘신랑’ 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 분을 향하여, “왜 당신들은 금식을 안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질문을 한 율법주의자에게 주님은 진심 어린 충고를 했습니다.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어떻게 금식을 할 수 있겠느냐?”고.

주님의 현존은, 그야말로 인류에게는 얼마나 경사스런 일이었습니까? 2천 년 전 유대 땅에 살던 사람들은 그런 복 받은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그들이 누리던 복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드님 면전에서 감히, “왜 당신들은 금식을 안 하느냐?”고 묻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석고대죄 해야 할 인간이 궁전 보좌에 계신 임금님을 향해서, “지금 당신도 나와서 석고대죄 하지 않느냐?”고 호령하는 투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장차 신랑을 잃어버릴 때가 올 터인데 그때 금식하거라” 하셨습니다.

신랑 되신 분을 잃은 때가 언제입니까? 주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시러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때, 곧 지금이 우리가 금식해야 하는 때라는 말씀이지요. 지금 우리가 금식하며 회개할 때인 것입니다.

<기도>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40일간, 저희가 마음으로라도 금식의 심정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도와 주옵소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죄의 길에서 떠나, 거룩을 위해 살도록, 사랑을 위해 살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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