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6장 25절: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새번역)
1932년 가을이었습니다. 평양 숭실중학교 졸업반에 재학 중인 이재면 학생은 그의 친구 두 명과 함께 금강산으로 무전여행을 떠났습니다. 자전거 세 개를 빌려 타고, 큰 용기를 내어 떠났습니다. 험한 길로 여러 날이 걸려 금강산에 도착한 그들은 도착한 바로 그 날 이름도 유명한 비룡폭포를 구경하러 산을 올랐습니다.
비룡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절벽 위로 올라갈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세 사람은 우회로를 통해서 절벽 위로 올라갔습니다. 떨어지기 직전의 물줄기는 바위 위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 건너편으로 한 사람 한 사람 건너 뛰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뛰던 친구가 미처 건너지 못하고 물에 빠졌습니다. 그 친구는 물속 이끼에 미끄러져 넘어져 천천히 폭포로 쓸려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어.. 어..” 하면서 물에 떠내려가던 친구는 폭포와 함께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절벽 밑을 내려다 보니 친구의 몸은 헤엄을 치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었습니다. 죽은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은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절벽을 내려 와서 친구의 시체를 물에서 건졌습니다. 시체 곁에서 한참 울었습니다. 어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날이 어두워져 가니, 한 사람은 시체를 지키고, 또 한 사람은 동네로 내려가서 사람들의 협조를 구하자고 했습니다.
이재면 군은 자진해서 시체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를 내려 보내고 죽은 친구의 시체 곁에 앉아서 기다리고 기다려도 동네로 내려간 친구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산짐승이 와서 덤빌까봐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릅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 고문처럼 길었던 시간을 기다린 끝에, 횃불을 받쳐 들고 사람들의 반가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 군과 그의 친구는 평양의 집으로, 또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가족들과 선생님들에게 많은 꾸중을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말을 잃고 한 동안 지냈습니다. 면목도 없었지만, 꿈 속의 일처럼 생각되는 죽은 친구 때문에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죽은 친구 대신 열심히 살자는 것이 이 군의 결론이 되었습니다. 허망한 죽음을 값진 죽음으로 삼기 위해서..
졸업이 가까운 어느 날, 교장선생님이 이 군을 불렀습니다. 교장은 이 군의 졸업 후의 진로 상담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 군은 고향인 용강으로 가서 농사 일을 할까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군은 우등생이어서, 선교사인 교장은 이 군에게 신학을 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어느 한국인 독지가가 장학금을 맡기면서, 신학 공부 시킬 만한 학생이 있으면 주라고 했네.” 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이 군은 교장선생님을 만나 그의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죽은 친구의 허망한 죽음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그의 몫까지 갑절로 공부하고 갑절로 교회 일을 할 책임이 있습니다”며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장학금으로 일본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1939년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함경도와 평양 일대에서,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부산과 서울, 그리고 청주에서 목회하던 중 1965년 중풍으로 일찍 현직에서 물러나 와병 중에 있다가 3년 후에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평생 이 목사는 교회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목회 중독’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다면, 제 아버지는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귀한 생명과 생애를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간절히 빕니다. 저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의 뜻대로 살아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도록,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