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6장 36절: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공동번역)
야고보 신부님은 연로하신 분으로 더구나 시력까지 아주 나빠져서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요청과 교구의 형편 상, 완전히 퇴직을 시키지 않고, 사제가 없는 한 작은 시골교회의 촉탁사제로, 그 교회의 예배를 인도하면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특별히 그의 우편을 통한 신앙상담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여러 지방의 신자 분들이 야고보 신부님에게 편지로 상담 요청을 보내 오곤 했습니다. 그의 나빠진 시력 때문에 그를 도와서 편지를 읽어 줄 사람이 필요했고, 편지를 써 보낼 때에도 대필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어느 날 데레사(?)라는 한 낯선 여자가 그의 사제관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갈 곳이 없어서 한 동안 만이라도 신부님의 식사를 도와 드리며 살고 싶어 합니다. 신부님은 허락을 하지요.
데레사는 한 먼 지방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한 자신의 자매가 제부에게 매일 구타 당하는 것을 보면서 원한에 사무칩니다. 하루는 동생을 죽일 듯이 덤벼드는 제부를 칼로 찔러, 동생의 생명을 구합니다. 그리고는 도망쳐서 야고보 신부님의 교회에까지 와서 은신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데레사는 이런 사실을 신부님에게 발설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신부님의 식사를 차리고, 또 편지상담을 도우면서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데레사는, 자신의 케이스를 상담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제관 정원 탁자에 신부님과 마주 앉아서, 오지도 않은 편지를 읽는 시늉을 합니다. 편지를 펴는 듯, 종이를 뒤적이는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범죄를 낭독하는 식으로 신부님께 말씀드립니다.
조용히 사연을 듣고 있던 야고보 신부는 옛 기억을 더듬 듯 말합니다. “그 편지를 듣고 있으려니까, 전에 어떤 자매에게서, 자기 언니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쳤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자기 언니를 애타게 찾고 있었지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가서 그의 동생에게서 받았던 두툼한 편지 뭉치를 꺼내 들고 와서 데레사에게 내어밉니다. 동생에게서 온 사연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언니 데레사의 살인사건은 피살자의 아내를 살해할 의도가 분명히 나타났으므로, 법원에서 살인자에게 무죄판결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서 돌아와 노년을 함께 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사제관으로 들어가, 이미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눈치 챘으면서도, 먼저 말하지 않고 데레사의 실토를 기다려 준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 신부님은 데레사를 위해 커피를 끓여 가지고 그녀에게로 나오려다 현관 부근에서 졸도해 죽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자비가 넘치는 사제로 살던 야고보 신부님의, 평범하면서도 훌륭하신 인격에 고개가 숙여지는 영화였습니다.
제게 다시 이전의 어느 때로 돌아가, 목회자로 살 수가 있다면, 이 야고보 신부님처럼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사제로 살고 싶습니다. 아, 제게 그런 기회를 다시 주신다면..!
<기도> 주님, 주님의 자비로 새 생명을 얻은 저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비로운 삶으로 살아가게,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