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23장 11-12절: “너희 중에 으뜸 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공동번역)
‘겸손’에 대해서 말씀을 묵상할 때면, 저는 몹시 주저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겸손하지 못해서, 겸손에 대해 아무 말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깊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른 주제는 제가 잘 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 묵상을 매일 제공하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또 할 말이 없습니다. 겸손에 관한 한 더욱 주저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연세대학교에서 1960년 전후해서 신학과 과장을 지내신 어르신으로 지동식 목사가 계셨습니다. 교수들이나 학생들이나 그 분이 먼발치서 지나가면 그를 일컬어 ‘진짜 목사’라고 수군댔습니다. 왜 그렇게 부르냐고 했더니, 그의 겸손을 보아 과연 그가 목사답다고 사람들이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짜 목사’로 인식되려면, 겸손해야 한다는 상식이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가령 세례 요한은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사람들에게서 받는 추앙과 영적인 리더쉽을 모두 모아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일에 썼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일에 남보다 철두철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표현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인간적인 족보를 조목조목 자랑꺼리로 삼고 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그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 안에 수록된 기독론 가운데, ‘바울의 기독론’ 하나가 특이합니다. “겸손하신 하느님의 아들 기독론”입니다. 빌립보 2장 6절 이하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질이 하느님과 동격의 분이셨지만, 겸손히 스스로를 낮추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고, 목수로 사셨으며,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마치 죄인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온갖 고난을 치르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를 높이시어 모든 피조물 위에 가장 높으신 분, 곧 구원자로 삼으셨고, 만세에 칭송을 받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겸손하게 사신 분에게 우리들의 신앙 고백으로 ‘구세주’라는 칭호를 드렸다면, 우리는 그 분을 조금이라도 닮아서 사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것이 바울의 논지였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좌우명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섬길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을 하자. 모든 수단,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어떠한 장소에서든지, 어느 시간이든지, 상대가 누구든지, 내가 섬길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섬기자.”
릭 워렌의 권고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하느님은 우리의 위대함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를 섬겼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섬겼느냐에 따라 결정하신다.”
<기도> 주님의 성령으로 저희를 도우시어, 저희가 이웃을 섬기는 올바른 방법과 지혜를 내려 주시고, 저희가 이웃을 섬기는 동안 하느님을 섬기는 결과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