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4장 29절: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밖으로 내쫓았다. 그들의 동네가 산 위에 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새번역)
1950년 가을의 일이었습니다. 유엔군이 평양으로 진주했습니다. 저희는 같은 울타리 안에 두 집이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 옆집의 큰 아들은 인민군 군관(장교)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 있었고 인민군과 함께 아마도 어느 전선에서 김일성이 승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어머니가 보따리 하나를 들고 저희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자기 아들의 군관 정복인데, 저희 아버지는 목사이니까 안전할 것 같다면서 좀 간수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태워 버리지 그러냐고 하니까, 그래도 나중에 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부탁하는 거라 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부탁이었습니다.
어쩐지 그날 저녁에 저희 집으로 총을 난사하면서 서북청년단들이 급습을 했습니다. 마루에 놓고 간 군관복 보따리가 발각되자, 저희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저녁을 잡수시던 중에 런닝 바람으로 붙잡혀 나갔습니다. 대문 앞에서 즉결처형 당하시는 줄 알고 우리 가족들은 얼마나 떨었는지 모릅니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뭔가 오해가 있었다. 이 분은 목사시다.” 고 증언을 해 줘서 간신히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인간은 자기 목숨은 귀한 줄 알지만, 다른 사람의 목숨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가장 가까이 있고 낯익은 이웃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로서 공생애에 돌입하시던 때에, 정든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설교하시기를,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시면서, 스스로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 환영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벼랑에서 떨어뜨려 죽이려 했습니다. 메시아이심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촌 구석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30년을 그들의 이웃으로 사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정도가 아니라, “그가 메시아라니? 그는 미쳤다” 정도로 반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미친 사람 때문에, 나사렛 동네가 로마군인들에게 쑥밭이 될 수는 없다”고 합의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웃인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듣게 되면, 인간은 “이것이 내게 어떤 유익을 주나, 또는 어떤 해를 주나”를 스스로 묻습니다. 그리고 그 계산이 끝나면, 내가 호의적으로 반응할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자기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예측해 보면서 삽니다. 별다른 행동이 없을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계산이 나오면, 가장 악의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사렛 사람들 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사람 사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있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여행을 하던 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들었던 제1급 정보는 장차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께서 권세잡은 자들에게 붙잡혀 죽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 자신이 죽게 된다는 정보였으면, 아마도 빨리 반응이 일어났을 것이지만, 스승 예수님께서 죽게 된다는 말에는 별로 빠른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사람, 가룟 유다가 자신의 태도를 먼저 결정했습니다. 선수를 쳐서, 스승 예수님을 배반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때 제자였다면, 예수님의 수난 예언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무반응? 도피? 구경 만? 배반? 어느 쪽이었을까요?
<기도> 저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의 구원을 위하여 고귀하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은혜에 빚진 저희가 저희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를 주저하지 않게 성령께서 저희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