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8장 33절: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개정개역)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페인 사람인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잘못을 너무 과하게 꾸짖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을 때는, 이미 그의 아들이 말없이 집을 나가 수도 마드리드로 가서 산지가 오래 되었던 때였습니다.
아들과 화해하기로 마음을 먹은 아버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들을 찾는 광고를, 구독자가 가장 많다는 ‘에 리베랄’ 신문에 냅니다: “파코야,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호텔 정문 앞에서 만나자. 나는 다 용서했다, 아빠가.”
파코라는 이름은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랍니다. 아버지가 약속장소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무려 800명이나 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세상에는 용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그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 채, 안타까와 하며 살고 있을 듯합니다. 자기가 먼저 가서 용서해 달라고 빌지는 못하고, 그저 용서 받기 만을 바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용서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우리 한 세상 용서 받아야 할 몸으로 살면서, 남을 용서하는 데에는 인색하지 않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간들을 용서해 주셨으니,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을 누구나 용서해 주면서 살기를 요구하시는 주님의 간곡한 권유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말하기를, “여러분 속에 용서의 영이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일이며, 심각한 일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용서를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 여부를 알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했는가 안 했는가로 판명됩니다. 만일 용서를 받았다면, 용서를 할 것입니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 주신다 하셨고, 의롭게 여겨 주신 무리들을 마지막 날에 영원한 나라에 거두어 주실 것 아니겠습니까? 이 엄청난 사실을 믿는 것이 우리들의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의 사랑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용서를 하며 살자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제물 삼아 저희 죄를 용서해 주셨으니 무한 감사 드립니다. 저희도 저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살도록,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