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새번역)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제기되었던 질문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구약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신앙과 다른 것이냐’ 는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먼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복음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고, 구약성경이 말하는 여호와 하느님 신앙과 맥을 같이하는 것인데, 다만 예수님의 복음은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완성’시키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집”이라는 기다란 명칭을 썼습니다. 그 세 가지로 분류되는 문서 가운데, 그들의 신앙생활과 가장 밀접한 경전이 ‘율법서’, 다른 말로 하면 ‘모세오경’이었습니다.
모세오경에는 모법인 십계명이 있고, 십계명의 시행세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육법전서’ 같은 법전이 모세오경 전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금과옥조로 지키고 있는 모세오경을, 예수님은 다른 랍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율법을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법의 정신’을 가르치셨습니다. 법을 적용할 때에, 반드시 그 법을 제정한 정신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일을 우선시하셨습니다. 법의 정신을 모르면서 문자 대로만 법 적용을 하면 법의 정신에서 벗어난 판결을 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이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성을 내지도 말고, 바보라고 말하지도 말고, 원한을 품지도 말라” 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을 살인으로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오경이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말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음욕을 품는 것을 이미 간음으로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오경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했지만, 예수님은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하셨습니다.
모세오경이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했지만,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율법 조항들의 ‘법 정신’을 파고 들어, 근본의 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율법의 완성’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율법도 지킬 수 없는데, 주님의 ‘법 정신’에 입각한 가르침은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지킬 수가 없다며, 아예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옛 율법시대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지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자만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있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죄에 묶임을 받게 했던 폐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보다 더 높은 데에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표준이 어디 있는가를 알면, 겸허한 자세로, 더 온전에 가까운 인격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 엄위로우신 하나님, 저희가 율법에 매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일 없게 하시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말씀 속에 비추인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깨달아서,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