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12장 29-31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 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개역개정)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면, 계명 하나를 짚어야지 왜 둘을 짚느냐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둘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두 계명을 똑같이 ‘가장 큰’ 계명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계명이 모두 ‘사랑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상은 다르지만, 실상 깊이 들여다 보면,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가장 큰’ 계명으로 둘을 짚을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사랑’이니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즉 관념적인 것이라고 속단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를 붙인 것입니다. 연인들이 사랑하는 데에도, 관념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는데, 어찌 창조주이요, 우주와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머리만 굴리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남달리 사랑한 인물을 누구를 꼽을까 생각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다니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신분이 포로였는데, 그의 생활이 늘 경건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무진 애를 썼으며, 믿음의 동지들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같은 소망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습니다.
세상은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풍습들로 뒤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주인은 단 한 분, 하나님 밖에 안 계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들을 ‘배타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배타적입니다. 결코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무신론도 있을 수가 없고, 무슬림도 있을 수가 없고, 공산당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 앞에서 우리들의 신앙을 굽혀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이 절대적으로 성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계명으로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인류애’나 ‘인본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곡해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교회를 ‘구제 센터’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큰 일 날 소리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섬겨야 하는 이유는, 그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가정의 ‘잃어버린 가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굶주리면 먹여야 하는 것도, 그들이 병 들었으면 돌보아 주어야 하는 것도, 그들이 갇혀 있으면 찾아봐 줘야 하는 것도, 하나님의 ‘잃어버린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구제사업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산가족’을 찾아오자는 것입니다.
제 집의 형제는 7남매입니다. 제가 돌아가신 제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제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던 제 형제들과 반목하면 안 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형제들도 아버지의 유훈을 따르도록 권유하면서 사는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 사랑’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들의 이웃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만들기’로 닿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모든 인류의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빕니다. 이를 위해 우리들에게 큰 계명 둘을 주셨사오니, 힘써 이 두 계명을 따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생활로 즐거이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