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5장 6절: 예수께서 그 사람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공동번역)
병자가 병이 낫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38년이나 앓고 있는 병자에게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만약 어느 젊은 남자가 같은 또래의 여자를 만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했다면, 이것은 서로 연애관계로 들어가자는 ‘사랑의 엔진’을 거는 말일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업가가 다른 유망한 사람을 향해서 “돈을 좀 벌고 싶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함께 일해 보자고 ‘사업의 엔진’을 거는 말일 것입니다.
저는 대학교 2학년 때에,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하신 구두인 신부에게서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제가 졸업한 대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으십니까?” 라고 묻는 말을 ‘유학의 엔진’에 시동을 거는 것인 줄은 모르고, 구 신부가 한국말 연습하는 것인 줄로 알고, 그냥 빙긋 웃고 지나 버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후 다시 같은 말을 물어 주지 않았습니다. 웃자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낫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으신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믿음생활의 엔진’에 시동을 걸고 싶은데, 동의하시겠습니까?” 이런 뜻으로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그들에게 “믿느냐”고 질문하시는 것을 복음성경에서 많이 봅니다. 가령 “네가 병이 나을 줄을 믿느냐?” 이런 형태의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사는 인간들에게 중요한 것이, 나의 이 고질병이 나음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도 아닐 것이고, 세상에서 누구랑 결혼해야 행복할까 하는 문제도 아닐 것이고, 무슨 사업을 해야 잘 먹고 잘 살까 하는 문제도 아닐 것이고, 예일대학교에 유학을 가느냐 못 가느냐도 아닐 것입니다.
주님께서 “낫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하신 것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네 ‘믿음의 엔진’에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네가 좀 동의해 주려무나.” 이런 의사타진이셨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깨닫는 것이고,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의 아드님의 대속하신 은총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구원의 과정은 믿음으로만 통과할 수가 있게 됩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이야말로 우리들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믿음으로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구원의 하느님, 저희가 믿음으로 하느님의 인정을 받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게 해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을 뵙게 해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