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장 32-36절: “내가 땅에서 들려서 올라갈 때에,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가 당하실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때에 무리가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인자가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인자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다녀라. 어둠이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빛이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라.” (새번역)
축구팀이나 야구팀이 우승을 했을 때에, 모든 팀원은 그들의 감독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헹가래를 칩니다. 예수님께서 ‘높이 들리우신다’는 말씀의 뜻이 이렇게 그의 업적을 찬양하여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무서운 형틀인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처참한 죽음을 당하셔서, 우리가 죽을 죽음을 대신 죽어 주시는 대속의 제물이 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양처럼 사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다만 착한 목자로 양 무리인 백성들을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권세 잡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기득권이 위협받는 일로 인식되어, 예수님은 위험인물로 지목되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죽음을 생각할 때에 그의 죽음의 뒤쪽에 오버랩 되는 수 많은 분들 가운데 한국인 한 분이 오늘 생각납니다.
그 분은 1902년 생입니다. 그가 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일제가 아침마다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황국 신민의 선서’라는 것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학교가 그에게 온갖 체벌을 주면서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았습니다.
중학생 시절에는 한창 만세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투옥 당했습니다. 아버지가 옥에 있으니, 생계와 학업을 혼자 지탱하는 것이 너무 무리여서 학교를 자퇴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가 세운 한센씨 병원 겸 요양시설에 전도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중환자 병실에 들어가던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가며, 감염을 우려해서 신문지를 바닥에 깔면서 들어갔습니다.
안에 있던 환자가 간호사에게 모욕감을 느꼈던지 욕설을 하면서 목침을 던졌는데, 그만 간호사가 그 목침에 머리를 맞고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전도사는 그 병실에 들어가 그 병자를 부둥켜 안고 울면서 속죄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후 그는 그 병자의 심한 환부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았습니다.
병원은 너무도 놀라서, 그 전도사가 금방 감염이 될 것이라고 경계했지만, 전도사는 차라리 감염이 되기를 바라면서 “같은 환자가 되면 마음이 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후 시설의 모든 환자들이 그 전도사의 말에 늘 감복하게 되었습니다.
일제 말기에 신사참배를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강요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들과 신도들은 ‘그까짓 것, 해 주자’ 하고 따랐지만 그 전도사는 철저히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포되었고, 5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건강을 많이 잃게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고, 출옥해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여전히 같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중, 여수-순천 반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반란군들이 그 목사의 두 아들을 잡아서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죽여 버립니다.
아들을 잃은 그는 그의 두 아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죽었으니 ‘가문의 영광’이라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기 두 아들을 처형한 반란군을 자기 양자로 삼았습니다.
2년 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피난을 가고 한센씨병 환자들 만이 병원에 남았을 때였습니다. 이 목사는 피난을 가지 않고 남았습니다. 환자들이 “목사님, 저희들은 인민군에게 해침을 받지 않을 것이니, 어서 피난을 하십시오.” 라며 간곡히 빌었지만, 목사님은 끝까지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인민군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을 붙들어 갔습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중앙청 건물에 태극기가 꽂히던 날, 남도 여수의 한 과수원 골짜기에서는 손양원 목사님이 인민군의 총탄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저는 영광스럽게도 교회가 추모하는 ‘성인들의 생애’를 묶어 책을 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성인들에 못지 않은 손양원 목사님을 지닌 한국교회가 무척 돋보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끝까지 따라 간 목사님을 묵상하면서, 이 사순절 마지막 두 주간 동안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각오를 새로이 다집시다.
<찬양기도>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