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장 3절: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새번역)
주님께서 저의 편이 되기를 바란다면, 제가 평소에 주님 편에 서야 되겠지요. 이것이 당연한 이치이지 않습니까? 제가 주님의 편에 서지 않고, 빌라도 편이나, 대제사장 가야바의 편에 섰다가, 제가 주님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 하면, 어불성설 아닙니까?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는, 복음서의 모든 기록들 가운데, 어느 정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석해 보면, 거기 한 켠에, 예수님을 처형하자는 편에 섰던 사람들, 그리고 또 한 켠에 현장에서 아예 도주했거나, 중간 입장을 보인 사람들, 그리고 주님의 편에 확실히 섰던 사람들, 대체로 이렇게 세 가지 사람들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1. 주님을 처형하자는 편에 섰던 사람들은, 대제사장들, 바리새파 사람들 대다수, 장로들 대다수, 예루살렘 시민들 다수, 빌라도 총독과 로마 군인들 대다수, 가룟 유다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2. 현장에서 도주한 사람들은, 주님의 열 두 제자들 대다수, 그 밖의 예수님을 추종하던 무리들 다수, 그리고 예수님께서 억울하게 당하고 계신 줄 알면서도, 구태여 나섰다가 해를 입을까봐 조용히 들어앉아 있었던 대다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3. 주님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제자 요한,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내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는 별로 드러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십자가 처형이 끝나고 장례를 위해서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가 솔선해서 나섰던 것은 참으로 용기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명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 때에 제가 만약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어느 그룹에 들어갔었을까, 자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그룹은 어느 그룹이겠어? 3번 그룹이지!” 이렇게 큰 소리 치고 싶지만, 역시 누구든 그 현장에 있어 봐야, 그가 어디로 ‘자빠질’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태도를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베다니에서 주님께 향유를 부어 드렸던 마리아는 누구보다 본을 보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예수님의 편입니다. 운명을 같이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진 않지만, 확실하게 이 메시지를 예수님과 모든 사람에게 ‘냄새를 피우며’ 알렸던 사람이라고 보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계획에 동조하고, 운명을 함께 나눌 사람이 주님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집에 속한 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확실히 살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겠습니다. 예수님께 속하고, 예수님의 편이 되어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마음을 쓰고, 제게 맡기신 시간과, 재능과, 재물과, 건강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바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