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장 20-24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이 몇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 빌립에게로 가서 청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예수를 뵙고 싶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에게로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은 예수께 그 말을 전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새번역)
‘영광을 받을 때’ 라는 말은, 영예로운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는 뜻으로 보통 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십니다. 하나도 영예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이하의 단락을 보면, 대뜸 알 수가 있습니다. ‘영광’ 이라는 말의 다른 용법이 있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영광이 다르더라” 하셨습니다.
천하 모든 만물의 본질적 존재 목적이 각기 따로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을 ‘영광’이라는 말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돌의 존재 목적, 풀의 존재 목적, 꽃의 존재 목적, 나무의 존재 목적, 동물들의 존재 목적, 인간의 존재 목적, 심지어 우리 주님의 존재 목적이 따로 있는데, 이를 각기의 ‘영광’이라 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총체적인 인류의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실 일을 두고, 주님께서 “나의 영광 받을 때”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우리 각자의 영광의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윤아무개 배우가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는 날이 그의 인생에서 영광의 날인 듯하지만, 아직도 그의 영광의 때는 아니고, 그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을 이루는 날이 되어야, 그의 진정한 ‘영광의 때를 맞이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광의 때’는 어떤 날입니까? 여러분의 생명을 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명을 내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느 때인지를 여러분 각자가 깨닫고 계시다면, 그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여러분의 ‘영광의 날’은 지연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리스 사람들이 예수님을 뵙자고 주님의 제자들에게 부탁하며 달려 들었을 때에 ‘영광의 때’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리스 사람들은 갈릴리 지방에 와서 살고 있던 수많은 이방인들 가운데 몇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보통의 그리스 사람이 아니고, 유대인들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님에게 들이닥칠 수난을 예견하고서 이를 예수님께 일러 드리려고 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일을 이미 다 아시고 계셨으므로, “내가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되는 일은 내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라고 하는 표현을 대신해서 “내가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곡식의 예를 들어서 말씀하시기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밀알의 영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 주님, 제가 땀 흘려 수고를 바칠 곳이 어디입니까? 주님, 제가 저의 눈물과 피를 쏟아야 할 일이 어떤 일입니까? 그 일로써 저의 본래의 존재 목적이 달성되기를, 곧 저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