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3장 25-27절: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바싹 기대어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그 빵조각을 적셔서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그가 빵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새번역)
3년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많은 기적들도 체험하고, 하늘나라 복음도 가장 잘 들리는 곳에서 들었고,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아 온 가룟 유다가 스승 예수님을 배반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왜 배반할 마음을 품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대제사장들에게서 예수님을 넘겨 준다는 약속을 하며 은돈 서른 닢을 받았기 때문에, 언제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 줄 것인가 틈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가운데는 아무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배반의 일이 있을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셨습니다. 그 때에 어리석은 제자들은 저마다 주님 앞에서 “주여, 접니까?”라고 여쭈었다 했습니다. 자기가 아니면, 된 것이지, 뭘 그런 질문을 합니까?
예수님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배신 당한 통분한 마음? 배신자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 쉽게 변절하는 인간들에 대한 불신? 아마도 이 세 가지가 복합된 감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제자들 앞에서 탄로나는가 싶었던 가룟 유다의 걱정이 주님의 말씀으로 오히려 가볍게 풀림을 받았습니다. “네 할 일을 어서 하여라.” 예수님과 자기 만이 아는 이 신호를 받고 유월절 잔치 자리에서 빠져 나온 가룟 유다는 곧장 대제사장의 본부로 갔습니다. 때는 밤이라 했습니다.
겟세마네로 향할 때까지 가룟 유다의 심경은 확고한 배신의 결심에 차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고민했으리라고 봅니다. 꼭 이 길을 가야 하느냐, 아니면 돌이켜서 이 일을 취소할까, 거듭되는 번복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끝내 돌이키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가 악역을 맡아 줬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우리들은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구원을 받았으니, 가룟 유다에게도 일말의 공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배반이 없어도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의 음흉한 흉계로 100% 십자가를 지실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가 자살해서 죽지 말고, 회개했다면, 그래서 다시 사도의 자리로 돌아왔다면, 그는 자신도 구원 받았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사도로 살았을 것입니다.
저도 배반의 길목에 들어섰던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 학부 2학년 시절에 종교철학, 신학개론 등의 강의를 들으면서, 저는 제 나약한 신앙심이 강해지기는 커녕 다 깨져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마음에는 신학교도, 교회도, 다 사기꾼들의 집단으로만 보였습니다. 목사였던 아버지도 이 사기꾼 집단에 당해서 섞여 든 피해자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어서 이 구석을 벗어나야 한다. 소위 신앙이 있다는 자들보다 더 신학공부를 열심히 해서 역사에 남을 책 하나를 쓰자. 책 이름은 ‘기독교라는 미궁으로부터의 탈출’, 다시는 사람들이 이 미궁에 빠지지 않도록 완벽한 탈출의 방식을 소개하는 책을 쓰기로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저를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할 기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할 문을 항상 열어 두셨습니다. 배반하라고 열어 놓으신 문이 아니고, 배반을 하든, 주님의 편에 속하든 우리 자신이 결정하기를 바라셔서 열어 두신 것을 깨닫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 만이 왕성하기를 빕니다. 저희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도록, 성령님께서 항상 지키시고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