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욥기 19장 23-27상 : “아,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기억하여 주었으면!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비망록에 기록하여 주었으면! 누가 있어 내가 한 말이 영원히 남도록 바위에 글을 새겨 주었으면!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가 살아 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내 살갗이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내 육체가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내가 그를 직접 뵙겠다.” (새번역)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을 하시면서 세 차례에 걸쳐서 장차 죽임을 당하실 일과,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열 두 제자가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평소 예수님의 말씀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일도 많았고, 또 워낙 알아듣지 못할 말씀이 많았기 때문에, 부활의 예언도 제자들은 그냥 흘려 들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분,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만은 흘려 들을 수가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고 3일째 새벽에 부활하신 무렵까지 대략 36 시간이 경과되었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예수님의 부활의 예언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몇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도 가장 간절하게 믿고 기다린 사람을 곱으라면, 저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였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자기 아들이 누군가의 손으로 죽임을 당했다면, 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죽인 원한을 남은 여생을 일 분 일 초도 잊지를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체포 당하시던 날, 밤새 로마병정들에게 매를 맞고 취조를 받으며, 조롱을 당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지친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끌고 골고다까지 올라가셨습니다. 발가벗기운 채 십자가에 못 박히워 높이 들리운 자기 아들이 세 시간 동안 몸부림치며 진통을 겪다가 죽어 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던 어머니의 심정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내 아들아, 부활해야 한다, 부활해야 한다, 평소에 말하던 대로 부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꽉 차 있던 분이 마리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 깨어지신 몸이 어떻게 부활하는 것일까, 상상하기 조차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30여 년 전,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신비의 경험을 한 당사자였기 때문에, 신비스런 부활의 믿음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잉태는 잉태고, 부활은 부활입니다. 아직껏 부활의 주님을 경험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예수님의 부활은 간절했습니다.
그러므로 믿고 싶은 것 만큼 의심의 진폭도 강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애 태우며 고뇌하던 36 시간이 흘러갔던 것입니다. 밤이 깊고 아직 동이 트려면 여러 시간이 남았던 때에 주 하나님께서는 아드님의 몸을 무덤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역사 속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식을, 새벽 녘에 무덤에 갔다가 돌아온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전해 들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뛸 듯이 기뻤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장차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수많은 이들의 부활의 역사가 이렇게 그분의 뒤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주님, 성모 마리아의 부활의 믿음을 저희도 지니고 살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육신으로 몇 십 년 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에만 몰두하지 말게 하시고,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부활신앙의 사람들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