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 마음이”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24장 22-27, 30-32절 : “우리 가운데서 몇몇 여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 계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새번역)

예수님의 열 두 제자에 범주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제자들이 예루살렘까지 주님을 따라 왔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실의에 빠져 있었고,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스승 예수님 처럼, 체포될까 두려웠을 것이고, 그야말로 표정만 보아도 침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눅24:17)

이처럼 실의와, 걱정과, 침통에 빠져 있는 오늘의 교회들을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말씀으로 뜨겁게 역사하시고, 다시 우리들 속에 활력을 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1세기 사도들은, 예수님을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 라고 고백했습니다.(히12:2) 바로 그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강단마다 오셔서 외치신다면 누군들 가슴이 뜨거워지는 역사를 경험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모든 설교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어, 설교자들의 입술로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똑같은 주님의 두 제자였지만, 엠마오로 가던 길의 두 제자들의 말은 냉랭하기 이를 데 없는 언사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습니다.”(눅24:21)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믿을 수가 없다’ 그런 말 아닙니까? 이렇듯이 ‘말씀 부정적’ 인 소리가 강단에서 외쳐지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 두 제자가 식탁에서 예수님을 알아뵙고 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길에서 그들은 다른 설교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증언은 신념에 차 있었습니다.(눅24:34-35)

무엇이 그들을 바꾸어 놓았습니까? 신령하게 임재해 계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바뀐 것입니다. 이런 질적 변화가 우리 교회의 강단에 서서 말씀을 선포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던 주님이시여, 저희에게 성령을 통하여 임해 오시고, 말씀으로 뜨겁게 저희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머리에서 머리로 전달되는 지식으로가 아니고, 심장에서 심장으로 전해지는 감동으로 구원의 소식이 전파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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