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해골들이 살아나 큰 군대로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에스겔서 37장 7-10절 : 그래서 나는 명을 받은 대로 대언하였다. 내가 대언을 할 때에 무슨 소리가 났다. 보니, 그것은 뼈들이 서로 이어지는 요란한 소리였다.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그 뼈들 위에 힘줄이 뻗치고, 살이 오르고, 살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 속에 생기가 없었다. 그 때에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생기에게 대언하여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렇게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너에게 말한다. 너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그래서 내가 명을 받은 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 속으로 들어갔고, 그래서 그들이 곧 살아나 제 발로 일어나서 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새번역)

여기서 말하는 ‘대언하다’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들려 주실 말씀을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맡기셔서 전하신다는 뜻으로 쓰는 단어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설교자에게서 듣는 말이 바로 ‘대언’에 해당합니다. 또 설교자를 소개할 때에 “(아무)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시겠습니다” 라고 소개하지 않습니까?

대언자가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죽은 해골들이 생명을 얻습니다. 대언자는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고 말합니다. ‘생기’ 란 히브리어로 ‘루아흐’ 즉 ‘성령’을 뜻합니다.

성령이 임할 때에, 광야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던 해골들이 살아서 일어나 서로 뼈들이 맞추어지고, 근육이 붙어, 살아 있는 인간이 되고, 이들이 군장을 갖추고, 대열을 지어서, 큰 군대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 에스겔이 전하는 신비롭고 장엄한 환상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전 주일에 지낸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오늘 읽으라고 주신 본문으로서, 육신으로 죽임을 당하셨다가 다시금 생명을 얻게 되는 이치를 설명한 구약의 예언 말씀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죽음이 아닌, 영으로 죽은 인간들이 성령을 통하여 새 생명을 얻게 될 일에 관한 예언으로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성령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여전히 광야에 흩어진 해골들처럼 영혼이 죽은지 오래 되는 인간들 만이 이방인들의 발길에 채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 만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환상으로 영원한 교훈이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현대교회는 유물론, 인본주의, 실용주의, 편의주의, ‘힘의 논리’, 성장지상주의, 종교다원론, 과학만능주의, 자유주의 등등의 비신앙적 이론들에 시달려 마치 죽은 시체 처럼 광야에 내쳐진 운명이 되어 있습니다.

이 해골골짜기에서 현대교회를 살려낼 길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교회 안에 하나님의 뜻이 전해지고, 성령으로 교회 안에 생기가 불어 오게 하는 것 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기도>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시여, 오늘의 교회 안에 바람으로 임하시고, 생기로 임하셔서, 광야에 흩어졌던 뼈들을 맞춰서 큰 군대를 이루시는 주님의 환상이 오늘의 실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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