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7장 21-23, 26절 : “…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새번역)
‘거지 왕자’ 이야기는 불경에도 나오는 모양입니다마는, 종교개혁기에 ‘유토피아’의 저자이기도 한 토마스 모어가 지어낸 이야기에도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3의 ‘거지 왕자’ 제목으로 소설 한 번 써 봅시다.
왕자가 기구한 운명으로 왕궁에서 자라지 못하고, 그만 거지 소굴에서 거지들이 빌어 온 젖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이제 겨우 여섯 살이 된 왕자도 자신이 왕자인 줄을 몰랐고, 거지들도 다 몰랐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를 알아본 신하가 있어서 거지 소굴을 벗어나 왕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룻밤을 궁전에서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불편했습니다. 더구나 자기가 입던 누더기 옷도 누군가가 가져다 버렸고, 신발도 가져다 버렸습니다. 그만 거지왕자는 울음이 폭발했습니다. “내 신발, 내 옷 다 어디 갔냐?” 고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그때 내전의 대왕대비마마가 이른 아침 동궁에서 들려 오는 통곡소리에 놀라서 달려가 울고 있는 왕자를 달랬습니다. “왕자여, 왜 우는 겁니까? 이젠 이 나라가 모두 왕자의 것인데, 그까짓 누더기 옷, 그까짓 신발 가지고 울면 안 돼요.”
요한복음 17장은 우리 주 예수님의 기도문입니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예수님과 그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과는 아버지-아들의 관계인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지금 두 분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아드님인 예수님은 세상에 계십니다. 하지만, 두 분은 한 분이시요, 한 ‘코이노니아’(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계신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간절히 비시는 말씀이, “아버지와 내가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같은 ‘코이노니아’ 속에 있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들의 기도는 간혹, 인간의 욕심으로 빌 때라든지, ‘부당한 졸라대기’ 기도는 하나님께 거부 당할런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거부 당하는 일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대로, 우리(믿는 사람들)가 하나님-예수님의 코이노니아 속에 들어가 살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들의 신분이 하나님-예수님과 한 ‘코이노니아’ 속에 살고 있다면, 마치 거지였다가 왕궁으로 복귀된 왕자처럼 우리들의 신분이, 어제까지 이웃해서 살던 세상 사람들처럼 ‘누더기 옷’이 사라졌다고, ‘다 떨어진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고 울먹일 필요가 없는 ‘왕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살게 해 달라는 청원이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 된 우리들은 결코 좀스럽게 살지 맙시다. 늠름하며 품위있게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의 기품있는 삶을 살아 가십시다.
<기도> 사랑이 극진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나님의 염려를 내 염려로, 하나님의 계획을 내 계획으로 삼고 살아 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