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5장 3-11절 : (새번역)
예수께서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서,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신 다음에, 배에 앉으시어 무리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복음 5장 서두에 나오는 ‘팔복’의 맨 처음 것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어떤 분은 이것을 “겸손한 사람”을 말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영혼이 가난한 사람” 즉 “죄인 됨의 자각이 뚜렷한 사람”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하여간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이라는 표현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입니다. 이 한 구절을 가지고 책 한 권을 쓴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책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단 아홉 절 속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실물을 만난 듯해서, 대단히 반가운 일입니다. 그 분이 바로 시몬 베드로입니다.
1) 베드로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의 생업이 갈릴리 어부였으니까, 갈릴리의 어종과 낚시법에 관해서 그를 따라올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목수집 아들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보시오” 할 때에 “이거 왜 그럽니까? 내가 갈릴리에서 그물낚시로 뼈가 굵은 사람이요.” 이런 건방을 떨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다 거두어들였던 그물을 다시 싣고, 돌연히 깊은 물로 나아갑니다. 얼마나 겸손합니까?
2) 베드로는 ‘투게더’가 되는 인간이었습니다. 자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담겨 있을 때, 협력할 사람을 쉽게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고기가 두 배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자기 그물에 들었던 고기이니 자기 고기로 주장하지 않고, 나누어 가질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투게더’가 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베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3) 베드로는 ‘영적 감응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고기가 엄청난 분량이라는 것을 직감하자, 그는 “저 사람과 동업하면 돈 많이 벌겠다” 는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았습니다. “저 분 속에 하나님이 계시구나.”
이렇게 깨달은 순간, 그는 대뜸 예수님 앞에 꿇어 앉아, “주여, 저를 떠나십시오, 저는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했던 것입니다. 이 고백이 예수님의 마음에 드셨을 것입니다.
4) 베드로는 ‘자기를 쉽게 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당신은 물고기를 낚지 말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시오.” 이렇게 자기의 장차의 진로를 선명하게 말씀해 주셨을 때에, 그는 즉시로 자기 직업, 자기 꿈, 자기 집안을 다 두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이상의 베드로의 네 가지 모습을 보면서, ‘팔복’의 서두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서, 그렇게 반가운 것입니다.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를 쓰셨습니다.
비록 저의 인생이 저물고 있어도, 이제라도 베드로를 닮을 수가 없을까요?
<기도> 겸손의 스승이신 주 예수님께 빕니다. 저 자신을 비우고 제 속에 예수님만 모시고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의 앞으로의 날들을 주님의 제자로 쓰임 받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