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5장 29-32절 :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많은 세리와 그 밖의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서, 그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먹고 있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불평하면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율법적으로 흠이 없게 살라고 가르치던 율법주의자들에게, 예수님은 율법보다 우선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생명을 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분의 뜻을 귀하게 여기며, 인격적으로 그 분의 사람이 되어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 우선하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은 흔히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밥을 굶는 사람의 입장, 아픈 사람의 입장, 헐벗은 사람의 입장, 외로운 사람의 입장, 모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입장이 되어 주는 것, 이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랑보다 우선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본래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자랐고, 한 때는 감리교에서 전도사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성공회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후 매일 감사성찬례에 참예하게 되었는데, 성공회에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감사성찬례의 서두에 ‘죄의 고백’을 하고, 사제가 용서의 기원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매일 하는데, ‘왜 죄의 고백을 매일 해야 하냐’ 고 누구 하나 불평을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어제도 죄의 고백을 했고, 용서를 받았는데, 오늘 또 왜 용서를 빌어야 하나? 매일 끊임없이 죄를 짓고, 또 와서 죄를 고백하느냐고 저는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50여년을 지나 오면서 생각해 보니, 이 기도서의 습관을 만든 이들의 생각이 옳았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남보다 죄를 많이 지어서, 매일 죄의 고백을 하게 했던 것도 아니고, 그보다 앞서 중세기 유럽 사람들이 남보다 죄를 많이 지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동서고금에 인간에게는 적어도 하루 한 번은 회개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믿음의 선배들의 생각이 옳았던 것입니다.
지금 저는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감사성찬례를 시작하면서 마음을 기울여 죄의 고백을 하며, 사제에게 용서의 선언을 받습니다.
<기도> 죄인을 회개시켜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성령의 은혜로 오늘도 주님 앞에 회개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이 죄의 고백을 드리며,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며 살다가, 마침내 하늘에 이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