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사도행전 12:25, 13:4-5, 15:36-40 : 바나바와 사울은 그들의 사명을 마치고,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왔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시므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그들은 살라미에 이르러서, 유대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은 요한(마가)도 또한 조수로 데리고 있었다…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파한 여러 도시로 신도들을 다시 찾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살펴 봅시다.” 그런데 바나바는 마가라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함께 일하러 가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고 말았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떠나갔다. 그러나 바울은 실라를 택하고, 신도들로부터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인사를 받고서, 길을 떠났다. (새번역)
오늘은 모든 예전적인 교회들이 ‘요한 마가’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본래는 어제(4월 25일)이지만, 어제는 주일이어서 하루 지나 오늘 기념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생시와 사도들의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일행을 맞아들인 집이었고, 초대교회가 시작한 집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가의 나이는 아직 20세 안팎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잡수신 다락방이나 성령께서 강림한 다락방도 마가의 어머니의 집이었고,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면서 만나게 한, 물동이를 들고 나왔던 남자(눅22:10)도 마가였으리라고 말합니다.
또 겟세마네 동산의 소유자는 마가의 아버지였는데, 마가는 그 동산지기였으리라고 하며,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홑이불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도망쳤던 청년(막14:51-52)도 마가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가는 나이가 어렸어도,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가장 클라이맥스인 수난의 현장에 있었던 증인이었으며, 초대교회가 탄생하던 당시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조역을 담당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서 그가 예수님 일행을 섬겼던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많은 수의 손님을 동반했을 것이므로 그에게는 대단히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당국자들에게 ‘요주의인물’이었기 때문에 마가는 자신과 그의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도 매우 걱정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의 전설에 의하면 나중에 마가는 베드로에게 감화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과 베드로가 옥에서 나왔을 때에 복음전도에 합세했으며, 바나바가 예루살렘의 구제활동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갈 때 마가와 동행했다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선교팀에 가담하여, 그의 서툰 행동이 바울에게 밉보여, 2차 선교여행 때에는 그의 외삼촌 바나바가 바울과 갈라선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마가의 성실성은 서로의 반목을 화합으로 이끌게 했고, 바울 자신도 말년에 말하기를, “마가는 나의 일에 요긴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딤후4:11).
주후 64년에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 당한 이후, 마가는 이집트로 가서 전도하다가 죽었다고 전해지며, 특히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큰 그의 업적은 그가 먼저 손을 댄 마가복음서 작성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최측근 베드로에게서 많은 소재를 얻었고, 복음 증언의 명수인 바울에게서 복음서 서술의 핵심을 배웠을 것입니다.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일이어도, 초대 사도들을 위해 결정적 섬김의 역할은 대부분 마가가 담당했을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현장에서 겪으며, 그 증인으로 평생을 살았던 마가를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항상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현장에서 살게 하시며, 그 증인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