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을 사람’, ‘화를 당할 사람’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6장 20-26절 :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고 내칠 때에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아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다.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에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새번역)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복이 있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가난의 이유가 게을러 일을 안 했거나, 낭비벽이 심하거나, 주색에 놀아나거나, 투전으로 재산을 모두 날렸거나, 재정관리를 미숙하게 했거나, 별별 이유가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다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문구들을 이렇게 조정해서 읽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를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가난해진 사람들은 복이 있다”로, 그리고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를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굶주리게 된 사람들은 복이 있다”로, 또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를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지금 슬피 울게 된 사람들은 복이 있다”로 읽으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마찬 가지로,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는 “너희, 하나님을 거역해서 부요하게 된 사람들은 화가 있다”로,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는 “너희, 하나님을 거역해서 배부르게 된 사람들은 화가 있다”로,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는 “너희, 하나님을 거역해서 웃게 된 사람들은 화가 있다”로 읽으면, 이해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부요하게 사는 것 자체가 벌 받을 일’이라는 논법은 ‘무산자혁명 선언문’에나 나올 법한 구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부자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람들에게 죄인 규정을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세리 사캐오의 집에도 서슴없이 가셔서 그 집안 사람들이 회심하는 것을 보시고, 부자였던 그들 모두에게 구원을 선포하셨고, 세리 마태의 집에도 가셔서 큰 잔치를 받으신 후, 부자였던 마태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부자가 어떤 방법으로 부자가 됐는지가 중요합니다. 불법한 방식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면, 마땅히 회개하고, 그의 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지요.

가난해진 사람도 그가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가 중요합니다. 가난의 이유가 불건실한 삶의 결과라고 한다면, 회개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자립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윤택한 사람이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기도>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저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충족시켜 주시나이다. 저희에게 맡기신 재물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여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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