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사도행전 16장 1-3절 :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 거기에는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신앙이 돈독한 유대 여자이고,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신도들에게 호평받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와 함께 가기를 바랐다.” (새번역)
바울서신에 보면, 대부분의 서신을 시작하면서, “나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편지를 씁니다” 형식의 인사가 있는 것을 봅니다. 고린도후서, 필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카전후서, 등의 서신들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디모데가 대필을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도 바울 사도가 심한 안질을 앓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디모데가 희랍어를 잘 했다는 뜻으로도 읽히지만, 심지어 옥중서신들을 대필한 것을 보면, 로마에서 바울이 감옥살이를 할 때에 디모데도 함께 있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고, 대필을 할 만큼, 바울의 심중에 깊이 들어갔던 일심동체의 제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바울선교단에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 사도행전 16장부터였지만, 일찌기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제1차여행(행14) 때에, 자기 고향 루스드라에 왔을 때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그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하나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일어서게 한 사건에 이어서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놀란 사람들이 하늘에서 제우스 신과 헤르메스 신이 내려왔다면서, 그들 앞에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사도들이 말려서 그 봉변은 면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과 이고니온 지방에서 따라온 유대인들이 군중을 선동해서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려 했습니다. 이미 죽은 줄 알고 그들이 바울을 성 밖으로 끌어다 버렸지만, 바울은 다시 살아서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행14:19-20) 이때 디모데가 바울 일행을 보살폈던 사람들 중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 선교단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운명은 항상 죽음에 임박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배우고 복음사역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디모데는 충성으로 바울을 섬겼고, 바울은 지극한 사랑으로 디모데를 양육한 스승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제자 디모데에게 쓴 편지들(디모데전후서) 속에서 그가 스승이며 사도로서 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애끓는 사랑으로 제자 디모데를 사랑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분신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복음 사역 안에서 이런 대물림을 하면서 일생을 살아간 바울 사도도 대단한 분이고, 그 대물림을 받은 디모데도 역시 훌륭한 ‘속사도’(제2대 사도)였습니다. 이들의 교육은 ‘도제 교육’이었습니다. 24시간 함께 살면서 스승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설교할 때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설교와 설교 사이에 설교자의 ‘삶’에서 더 많이 배우는 것이 ‘도제 교육’입니다. 역시 신학 수업은 도제교육으로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 신앙은 들어서 배우기보다 오히려 ‘보고 배울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기도> 대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하나님, 사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가게 하셨나이다. 비록 2천년이 지났어도, 놀라우신 스승 예수님의 가르침을 부족한 저희들을 통해 이어가시옵소서. 주님의 종 바울, 그의 제자 디모데의 본을 이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