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뿐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사도행전 17장 22-25절 :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새번역)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며, 하늘에는 신들의 세계가 있고, 땅에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땅에는 모든 것이 유한하고 일시적이라면, 하늘은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라고 보았습니다.

하늘에는 진리의 세계요 본질이 존재하는 반면, 땅에는 하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서, 땅의 것들은 모두 허상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들의 세계를 설명하는 신화가 일찍부터 있었습니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며, 그는 하늘과 천둥 번개로 인간에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헤라는 제우스의 아내인데, 가정의 수호자이며, 결혼을 주관한다고 했습니다.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 아레스는 전쟁의 신이며, 아프로디테는 미와 사랑과 성의 여신이라 했습니다. 아폴로는 태양의 신,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 헤파이스토스는 불의 신, 헤르메스는 지혜의 신, 데메테르는 추수와 농업의 여신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다양한 경험들을 따라 그것을 관장하는 신들을 반드시 섬겨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미처 알지 못하여 섬겨 드리지 못한 신이 노하시면 안 된다 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신’의 신전을 따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점을 뚫고 들어가, “너희가 미처 알지 못하던 신, 여호와 하나님을 내가 알려 준다”고 복음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놀라운 착상이기는 합니다만, 거기에는 하나의 함정이 있었습니다.

이런 접근으로 ‘그리스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신’으로서의 하나님은 설명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리스 사람들이 믿었던 이원론적 다신론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설명했기 때문에, 다른 신들은 어떻게 섬길 것이냐를 더 설명해 줘야 하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같은 그리스 사람들의 또 하나의 큰 도시인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고전2:1-2) 라고 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신화나 철학을 빌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다시는 안 하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 관해서 알려 주신 것은 신구약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더 없습니다. 무슬림의 코란경, 모르몬교의 금속판 경전, 유불선 삼교를 종합한 무슨 원리, 버트란드 럿셀의 무신론 철학, 뉴에이지를 비롯한 명상 종교들의 묵상집들, 그 어떤 것들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더 보강해 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오로지 십자가 위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전할 뿐입니다.

<기도>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신 주 하나님, 이 십자가 복음 이외에는 저희가 하나님을 더 아는 길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 십자가의 길로만 하나님께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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