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이 있는 신앙인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105편 36-45절 : “그가 또 모든 기력의 시작인 그 땅의 장남을 모두 치셨다. 그들로 은과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가운데서 비틀거리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이집트 사람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떠날 때 기뻐하였다. 그는 구름을 펼치셔서 덮개로 삼으시고, 불로 밤길을 밝혀 주셨다. 그들이 먹거리를 찾을 때에, 그가 메추라기를 몰아다 주시며, 하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해 주셨다. 반석을 갈라서 물이 흐르게 하셨고, 마른 땅에 강물이 흐르게 하셨다. 이것은 그가 그의 종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거룩하신 말씀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백성을 흥겹게 나오게 하시며 그가 뽑으신 백성이 기쁜 노래를 부르며 나오게 하셨다. 그들에게 여러 나라의 땅을 주셔서, 여러 민족이 애써서 일군 땅을 물려받게 하셨다. 이것은 그들에게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새번역)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표간증은 출애굽사건이었습니다. 포악한 바로왕과 애굽에 열 차례에 걸쳐 재앙을 내리셨던 하나님의 끈질긴 이스라엘 해방의 의지,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인들의 진로를 여셨던 하나님의 권능, 40년을 광야에서 먹고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이 모든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했던 이스라엘의 민족적 간증이었습니다.

성령강림의 첫 경험이 있던 날,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한 간증은 대단히 힘차고 확신에 넘친 간증이었습니다. “너희들이 구세주로 오신 분을 죽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무덤에서 다시 살리셨다. 우리가 바로 이 일의 증인이다.” 이것이 그의 목숨을 걸고 외친 간증설교의 골자였습니다.

제1대 사도들은 제 각각 간증의 말씀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별히 사도 마태,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여 그들의 간증문을 남겼습니다. 베드로는 마가를 통해서 예수님과 동행했던 경험을 간증문으로 남겼고, 바울은 누가와 디모데와 여러 조력자들을 통해서 남겼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크고 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세상에알리며 살고 있습니다. 마치 시인 김남조가 “모든 인간은 각자의 ‘소설’을 한 권 씩 쓰며 세상을 산다”고 말하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의 간증을 가지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저도 저대로 간증을 가지고, 매일 힘을 얻어, 신앙생활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간증활동이 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때는 교회에서 간증이 힘차게 역할을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원산에서, 평양에서, 피난지에서, 서울에서, 선교지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힘차게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가 간증을 잃었습니다. 교회의 대표간증자들인 담임목사들이 너무나 마이크를 독점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요?

코로나 상황은 이 일을 우리 안에서 고쳐 나가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런지요? 조용히 다물고 있었던 모든 크리스천들의 입을 열어, 오늘날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라고… 우리들이 좀 외치기를 종용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하신 마음이 지금 엿보이지 않습니까?

<기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이시여,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보이시는 모든 징조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확증으로 늘 증거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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