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3장 13-17절 :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밖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새번역)
라디오를 들어보기 전까지는 KBS방송국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텔레비전으로 보기 전까지는 KBS텔레비전방송국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개미들이 하나님을 인식하는지 못하는지를 우리 인간들은 알지 못합니다. 개미들의 인식기능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닌 인식의 기능이 허락하는 만큼만 우리 인간들은 인식하며 삽니다.
인간의 인식기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에 그 한도 내에서 하나님을 인식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하나님 인식을 세 가지로 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1) 그 하나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리자를 직접 대면한 경험입니다. 이 경험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인류의 조상 아담, 그리고 그의 아들 가인, 그리고 홍수를 만났던 노아, 출애굽 사건을 이끈 모세,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 위대한 왕 다윗, 민족지도자 사무엘,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느헤미야, 다니엘 등등 이 모든 이들이 모두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이들이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면했다고 한 사람은 모세였다고 했지만, 눈으로 하나님의 눈과 코와 입, 또는 손과 발을 직접 뵈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섰다고 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은 들었으나, 눈으로 뵌 것은 천사와 같은 하나님의 대리자였습니다.
구약의 선조들의 하나님 알현의 증언들이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서, 그들의 후손들은 이 기록들을 통해서 하나님 신앙을 대대로 물려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2) 또 하나의 본격적인 하나님 경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으로 뵐 수 없는 분이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뵐 수도 있고, 말씀을 하시면 들을 수도 있고, 함께 식사를 나눌 수도 있고, 기대면 체온도 느낄 수가 있었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게 경험한 하나님께서는 악질적인 인간들에 의해서 아무 잘못이 없이 다만 그들에게 자꾸만 불편한 존재로 인식되어 십자가 형을 부과해서 죽이고 맙니다.
이렇게 경험한 예수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한 증언을 하지 않았다고 제자들이 안타까와했다고 말하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복음서가 말하는 것은 분명히 그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의심 많은 제자 도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이라고 예수님을 호칭합니다.(요20:28)
신약성경에 수록된 네 개의 복음서는 그 기록목적이 모두 “나사렛 예수는,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혹은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다” 고 증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의 사랑, 그분의 말씀, 그분의 하신 일, 이 모든 것을 보면,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어떻게 그랬겠느냐는 증언들인 것입니다.
3) 세째 번 하나님 경험은, 영으로 인간에게 인식되고 있는 하나님 경험입니다. 성경에는 창세 때부터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합니다.(창1:2)
구약성경에 ‘루아흐’ 라고 하는 어휘는 ‘바람’, ‘숨’, ‘생명’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관해서는 ‘성령’을 뜻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희랍어에 ‘바람’을 뜻하는 ‘프뉴마’라는 단어나, 또는 ‘프뉴마 하기오스’(거룩한 바람) 라는 관용어가 ‘성령’을 표기할 때에 쓰여지는 말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께서 하시던 일을, 영으로 인간세계에 계시면서 계속하시는 분으로 알려 줍니다. 열 두 사도들의 심령에도, 사도 바울의 심령에도, 초대교회의 신도들의 심령에도,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심령에도 들어오시고, 함께 계시고, 함께 일하시는, 영으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상의 세 가지 경험은 각기 다른 신적 존재들의 경험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에 관한 세 가지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의 경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경험’, ‘성령 하나님의 경험’ 을 자주 증언하다 보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험으로 줄여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도 없는 ‘삼위일체’라는 말을 교회가 쓰게 된 사연입니다.
<기도> 성삼위로 저희가 경험한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이것은 저희에게 혼동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우둔한 저희에게도 하나님의 높고 크신 뜻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삼위로 저희와 함께 계시고, 세세토록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