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하나님, 잊음의 하나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신명기 13장 7절 :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 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새번역)

참고 성구 – – 이사야 43장 25절 : “그러나 나는 네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용서한 것은 너 때문이 아니다. 나의 거룩한 이름을 속되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내가 더 이상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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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에는 기억이라는 중요한 장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치가 기능을 하지 못하면, 우리 인간은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가령, 기억력이 상실되어서, 자기 아들 딸도 못 알아본다고 하면, 그의 인간관계는 끝장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혹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저는 평소 신앙생활을 신실히 하시다 작고하신 한 할머니 교우를 기억합니다. 소위 ‘치매’ 때문에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해도 성경을 찾지 못했고, 잘 아시던 성가를 부르자고 해도 부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침통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그를 잊지 않으셨는데, 왜 우리 인간이 침통해 하느냔 말입니다.

신명기 본문은, 우리 인간의 기억력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 자녀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심으로” 우리가 그의 사랑 속에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기억이 근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은 하나님의 기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인간의 마음을 일치시키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이름 마저 잊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영원한 나라에 살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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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잊음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죄를 잊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영혼을 괴롭히던 죄들을 저 먼 바다 속으로 던져 넣으실 것이라고 했고(시편103:12),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시리라”(이사야43:25)고 했습니다.

빅톨 위고의 ‘레미제러블’에는 주인공 쟝 발쟝의 과거를 잊지 않고 끝끝내 그의 뒤를 추적하는 집요한 경감 ‘쟈베르’ 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이 한 세상을 남에게 쫓기듯 살고 있습니다. 오로지 대속과 용서의 하나님 만이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너희 죄 사해 주사 기억도 안 하시네, 너희 죄 사해 주사 기억도 안 하시네. 불쌍한 사람들아, 오라 하시네. 너희 죄 사해 주사, 너희 죄 사해 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기억 아니 하시네.”(찬송가 187장 3절)

<기도> 기억의 왕이시며, 잊음의 왕이신 하나님, 저희 죄를 완전히 도말하여 주셨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한결같으신 사랑을 잊지 않 으시나이다. 주님의 긍휼과 사랑 만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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