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7장 6, 12-14절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그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되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새번역)
‘율법과 예언서’ 또는 ‘율법과 예언서와 성문서집’ 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말하자면 구약시대의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의 골자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라는 교훈 한 마디로 줄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비교종교학에서는, 이 ‘사랑의 교훈’이 다른 종교에도 모두 있다면서, 종교의 유사성을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즉 공자는 ‘인’(어질 ‘인’)을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인’이란 사랑, 용서, 남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것, 그리고 ‘역지사지’(입장을 바꾸어 생각함)하는 마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대자대비’(지극히 자비로움)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를 위해서 ‘상불경하라’(언제나 다른 사람을 경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성불’(부처가 될 수 있음)할 수 있으므로, 누구든 인정해 주고, 심지어 ‘찬탄’을 해 줘야 한다고 했답니다.
무슬림의 창시자 마호멧도 말하기를, “가장 완성된 인간이란 이웃을 두루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이웃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상관없이.” 라고 했답니다.(코란경)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앙을 연구한 사람이 쓴 ‘인디언의 복음’(어네스트 톰슨 시튼 지음)에 보면, “기도와 금식, 그리고 위대한 봉사를 통해서 인간은 … 큰 신비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고, 내세로 들어갈 수 있다”고 인디언들은 믿는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공통점을 발견하십니까? 섣부른 비교종교학으로 종교는 다 같다는 결론을 내리면 곤란합니다. 무언가 유사한 가르침이 보인다 해서, 대뜸 종교는 일치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지요. 삼원색을 쓴 것이 공통되다고 해서, 미켈란제로와 솔거와 세잔느의 그림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요. 도-미-솔이 나온다고 해서 바하와 우륵과 존 러터의 음악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요.
저희가 믿는 기독교는 역시 ‘사랑’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인간을 위해 대신 죽고 부활하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을 본받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비슷합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이 말로만 사랑을 떠드니까, 그들이 잘 알아듣지를 못하는가 봅니다.
<기도> 사랑의 주 하나님, 저희가 예수님께서 본 보이신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서, 주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