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22장 39-46절 :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제가 잘 아는 어르신이 근자에, 함께 살던 의정부에서 거제도로 이사를 했습니다. 한 번 놀러 오라 하는데도, 시간을 못냈습니다. 그 어른이 서울 병원에 올 일이 있어서, 서울에 왔다가 거제도로 내려가는 날 아침에 저희 집 앞에 차를 대어 놓고, 저희 내외더러 빨리 차를 타라고 했습니다. 타니까, 거제도까지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분 내외는 앞 자리에, 저희 내외는 뒷자리에 앉았는데, 딱 한 번 쉬고 내리 달려 4시간 만에 거제에 도착했습니다. 시속 130킬로 정도로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빨라서 저는 기절할 정도였지만, 하는 수 없었습니다. 네 사람이 모두 80을 넘었으니, 하나님께서 데려가신들 그리 크게 문제 될 일도 없겠다 싶어서, 눈을 딱 감고 “아버지여,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수 밖에요.

그러나 이것은 ‘체념의 언어’였다고 보아야지, ‘믿음의 기도’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흔히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기원하는 바를 아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부족하니까 하나님께 매어달릴 일이 많지요. 하지만,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 드린 기도를 보면, 기도는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까지 애써 복종의 마음을 다져가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기도는 전적으로 개선돼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장차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올리시기로 작정하고 계셨음을 예수께서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신이시며 인간이신 예수께서는, 그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의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숨을 편히 쉴 수 없는 진통의 연속인 십자가형을 모면하고자 씨름하고 계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하소연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기고 말았다면, 우리 인류의 운명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의 시각에 다다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성자 예수의 복종의 결단을 듣게 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두 분께서 모두 참아내기 어려운 결정을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인류를 지극히 사랑하시므로 이루어내신 두 분의 결정이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였습니다.

저희의 기도도 겟세마네의 주님의 기도를 닮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 우리들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삽시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정해진대로 땅 위에 사는 저희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저희의 인간적인 목표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위장되는 일이 없기를, 또 저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도 없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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