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5장 22-30, 34-36, 41-42절 : 회당장 가운데서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아래에 엎드려서 간곡히 청하였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예수께서 그와 함께 가셨다. …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여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 그래서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말하였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 예수께서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서,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달리다굼!”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새번역)
이 대목은 두 개의 에피소드가 한데 얽혀 있는 곳입니다. 따로 떼어서 각기 독립된 사건으로 기록해도 좋을 것을, 왜 한데 묶어서 모자이크 형식으로 합해 놓은 것일까요? 죽어가던 회당장의 딸을 살려 주시러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던 예수님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 혈루증 환자를 만나는 이야기를, 사이에 끼워넣은 것입니다.
마치 시간적으로 사건 진행을 질서있게 서술하기 위해서 이런 방식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마가복음이 뭔가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기록했다고 봐야 합니다. 무슨 의도였겠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회당장의 딸은 예사로운 병이 아니라, 죽을 병이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 소녀는 살아난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 죽었던 소녀가 살아난 사건의 비중을, 혈루증 환자의 믿음보다 크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을, 의사에게 왕진 요청을 하듯이, 자기집으로 오시라고 요구합니다. 와서 자기 딸에게 ‘손을 얹어서 낫게 해 달라’고 치유의 방법까지 주문합니다.
그러나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던 도중에 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 한테서 그의 딸이 이미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회당장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혈루증 환자에게 신경을 쓰지 말고, 빨리 서둘러 갔더라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원망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회당장은 눈물을 흘리면서 낙심했을 것입니다. ‘이젠 틀렸구나’ 낙심천만일 것 아니겠습니까? 이 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장을 격려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회당장이 두려워했고, 믿음이 바닥난 것을 나타냅니다. 사실상 이제 예수님께서 자기 집으로 가셔도, 하실 역할이 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혈루증 앓는 여자는 예수님의 옷자락 만이라도 자기 손으로 만지면 자기 병이 나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 믿음에 예수님께서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공을 모든 사람 앞에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입니다.
회당장의 믿음과 혈루증 환자의 믿음은 그토록 큰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혈루증 환자의 얼굴을 모두가 바라볼 수 있도록 내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 본문에서 회당장과 혈루증 환자 두 사람의 믿음 가운데 제 믿음은 어느 편에 속하냐 하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회당장의 믿음과 혈루증 환자의 믿음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희미한 믿음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생깁니다.
이 각성을 하라고, 회당장의 믿음과 혈루증 환자의 믿음을 동시에 보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기도> 이 세상에서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시는 주 하나님 아버지, 저의 나약한 믿음을, 반석 위에 세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