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2장 1, 7-9절 : 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바울)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 도리어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나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새번역)
하나님께서 쓰시면 기둥이 됩니다. 자기 자신이 기둥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기둥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 두 사도 베드로와 바울을 동시에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려면,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이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해서 삽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인간적으로 보면, 약점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과격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며, 학구적인 실력파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일에 앞장서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을 가장 측근에서 뒤따르며 배웠던 사람으로,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들어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은 율법가로서, 대단히 논리가 강하며, 신념대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철두철미한 실천주의적 도덕분자였으며, 자주적인 생활을 평생의 신념으로 했습니다. 잘못된 일은 그냥 넘길 수 없었고, 더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은 참지를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상대하기가 힘든 인간성이었습니다. 더구나, 초대교회의 일꾼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데에 앞장선 그는 가장 두려운 박해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변화시키시고, 심지어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이 두 과격한 성격의 지도자들은 서로 부딪힌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없는 예수님의 관용과 자비로 양육 받은 베드로. 그리고, 하나님은 율법준수로 섬길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시라는 사실을 십자가 사건에서 깨닫게 된 바울. 이 두 분의 신앙은 결국 서로 연합하여 초대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된 동력이 되고, 마침내 큰 기둥으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베드로가 유대인 복음화를 담당했다고, 이방인 선교는 제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담당했다고 해서, 이방인 사회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일을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활동의 범위를 일단 그렇게 구분해 놓고, 서로 협력하면서 교회를 발전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기도> 어부 베드로를 불러 교회의 큰 기둥으로 삼으시고, 율법주의자 바울을 불러,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이 알게 한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저희가 사는 곳에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작은 사도들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