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91편 1-8절 : 가장 높으신 분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너는,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머무를 것이다. 나는 주님께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지할 하나님” 이라고 말하겠다. 정녕, 주님은 너를, 사냥꾼의 덫에서 빼내 주시고, 죽을 병에서 너를 건져 주실 것이다. 주님이 그의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고, 너도 그의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니, 주님의 진실하심이 너를 지켜 주는 방패와 갑옷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밤에 찾아드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낮에 날아드는 화살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흑암을 틈타서 퍼지는 염병과, 백주에 덮치는 재앙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왼쪽에서 천명이 넘어지고, 네 오른쪽에 서 만명이 쓰러져도, 네게는 재앙이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오직 너는 너의 눈으로 자세히 볼 것이니, 악인들이 보응을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새번역)

시편 91편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신앙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경건하고, 의롭고, 자비롭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이라면,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시작하던 2020년 정월부터 이제 1년 반이 지났습니다. 비록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게 되었고, 비대면 활동으로 생활이 위축되어 갔지만,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은 결코 위축되지 않고 상존하고 있음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델타 변이’로 병이 더욱 드세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다만 상황에 적응할 뿐,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자비와, 경건과, 정의를 추구하는 우리들의 삶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산속으로 현실도피를 권할런지 몰라도, 힌두교에서는 무소유가 해답이라고 가르칠런지 몰라도, 무슬림들은 무슬림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대책이라고 가르칠런지 몰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어떤 특정의 장소, 어떤 공동체에 구원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이 우리를 구원하여 줄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쓰러져도,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하지 못하리로다” 하신 약속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 재앙’ 이라고 말씀한 내용 가운데는, 지금 세계를 삼키고 있는 ‘코로나 전염병’도 속하여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상황이 아무리 극악해져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의 활동은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고, 우리들의 자비의 손길도 더욱 자상해질 것이며, 우리들의 의로운 삶은 더욱 세상을 고쳐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도의 골방은 더욱 경건함으로, 순종함으로, 정성으로 뜨거워져 갈 것입니다.

<기도> 크신 능력의 주 하나님, 이 코로나 전염병이 다 지나가도록,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 날개 밑을 떠나지 않도록, 저희를 경건한 삶에, 자비로운 삶에, 의로운 삶에, 성령 안에 항상 거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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